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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성석제 / 창작과비평사

無不爲自然 2019. 3. 13. 09:50

 지리산에 터를 잡은 친구에게 놀러 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본 그 집은 시골 농가를 최소한으로 현대적으로 개조한 집이였다. 넓지 않은 마당에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줄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큰대자로 누우면 다 차지할 정도의 조그마한 평상이 놓여 있었다. 본채의 오른쪽으로 출입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구식 부엌을 입식으로 개조한 주방이 있고 옆으로는 좁다란 대청마루가 있고 그 뒤로 상하로 방이 두칸이 있다. 처음 가본 그 집을 기웃기웃 구경을 하는데 아랫방에 5단 책장이 2개 있었다. 쭈욱 한번 둘러보고 만 그 책장에 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꽂여있었던게 기억에 남는걸까? 200권이 넘는 책 속에서 딱 이 책만. 지금 생각해보면 책상 위에 펼쳐져 있어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나 싶다.

 성석제 소설의 특징을 한 마디로 꼽는다면, '발랄함'이다. 말장난 처럼도 느껴지지만 언어적 유희가 경쾌하다. 절차탁마. 언어의 연금술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어를 갈고 닦은 솜씨가 돋보인다.


 * 내게도 어떤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인데 거울이 없어서 모르겠고 있었다 하더라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기에 모르겠고 들여다 봤다 하더라도 모를 것 같다. 딸을 약탈하러 온 도둑의 표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칼을 던지고 투항하러 온 자의 표정도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정략결혼을 강요하러 온 자의 표정도 아니었고 애끓는 사랑을 호소하러 온 자의 표정도 아니었으리라. 확실한 건 거쳐야 할 과정을 거쳐내야 하겠다는 의지였다. p200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외의 단편소설들은 왜 쓴거지? 글쓰기 연습용인가? 할 정도로 주제의식이 박약해 보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