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우주 만물 그 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토지1 p28
* 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 낙엽이 날아내린 별당 연못에, 박이 드러누운 부드러운 초가지붕에, 하얀 가르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지상의 삼라만상은 그 청청한 천상의 여인을 환상하고 추적하고 포옹하려 하나 온기를 잃은 석녀(石女), 달은 영원한 외로움이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검은 명부(冥府)의 길손이다. 토지1p31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이레 (0) | 2020.01.09 |
---|---|
아무튼, 비건 / 김한민 / 위고 (0) | 2019.11.14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 오주석 / 솔 (0) | 2019.10.15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 갈라파고스 (0) | 2019.10.10 |
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 / 김영사 (0) | 2019.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