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을 여러 개 만들면서 뭘 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기억이 안 날 거 같아서 네임펜으로 몇 개는 적어뒀는데 성능이 시원찮았는지 지워져 버리는 통에 뭘 심었는지 모르겠다. 땅에 흙이 널려있는데 흙을 사는 것도 그렇고 해서 그냥 대충 만들었더니 이런 사태가 일어나 버렸다. (앞으로도 물론 돈을 주고 흙을 살 마음은 없다.) 아스파라거스 종자를 사다 심었는데 싹도 안 보이는 게 아마 그 모종판일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저 조그마한 모종판이 비좁을 정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새싹들. 어린 동물들의 새끼들처럼 여리디 여린 새싹들이 귀엽기도 하다. 하지만 텃밭을 가꾼다는 건 내가 먹을 생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뽑아내야 하는 일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개를 내민 삶을 갈망하는 처절한 소리들을 외면하고 뽑아내야 한다. 망설이는 순간 이름 원치 않았던 풀들로 텃밭은 원시 상태로 돌아갈 테니까.
텃밭을 시작하면서는 채소와 풀의 공존을 꿈꿨다. 제초제를 하거나 비닐 멀칭을 하면서까지 텃밭을 가꿀 생각은 없다. 풀을 뽑다가 왜 사람들이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 멀칭을 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풀과의 공존을 말하는 사람들은 농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 또한 텃밭 농사를 하기 전에는 그랬으니까.
저 많은 새싹들의 이름 찾기가 앞으로의 나의 숙제이다. 몇 개는 알 듯도 하다. 명아주 새싹, 광대나물 새싹, 닭의 장풀 새싹, 도깨비바늘 새싹, 돌콩 새싹, 바랭이 새싹, 개여뀌 새싹. 작년에 나의 텃밭에 많이 보였던 풀들의 새싹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