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역사에 관심이 많아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젊은 시절에는 잘 짜인 소설 이야기들에 흥미를 더 느꼈는데 이제는 허무맹랑한 픽션보다는 과거 역사 이야기들에 더 관심이 간다. 이 책도 국방부 금서 목록에 있다. 성공회대 교수인 저자 한홍구 박사는 TV에도 종종 얼굴을 내미는 잘 알려진 역사학자이다. 부제목 '단군에서 김두한까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인물이나 사건 중심의 역사책이다.
조선史도 아니고 고려史는 더더욱 아닌 대한민국史. 안타깝지 않고 자랑스럽기만한 역사가 어디 있을까마는 길지 않은 대한민국의 역사 이야기는 시작부터 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산되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가 현재가 되어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못해 좌지우지하는 형상이다.
삶이 바빠서 또 잊어버릴테지만 잊고 있었던 과거의 역사를 잠시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한다.
* 청산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를 척결하려던 반민특위가 오히려 친일경찰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했고,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모두 1949년 6월의 뜨거운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친일파 청산을 외치던 민족세력들이 오히려 친일파에 청산당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p20
* 1920년대까지 파산당한 우리 동포들이 마지못해 짐을 싸 만주로 발걸음을 뗐다면, 1930년대 일본과 조선의 청년들 중에는 출세나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만주로 향한 사람들도 많았다.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긴 칼 차고 싶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박정희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p93
* 이 병의 특징은 멀쩡한 두 발을 갖고서도 자신이 홀로 설 수 없다고 - 증세가 심해지면 홀로 서서는 안 된다고까지 - 생각하면서,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굳건히 내려 서려는 건강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두들겨 패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이 병의 병원균은 뇌 속 깊이 침투하여 환자 스스로 병에 걸린 사실을 부인하게 만들기 때문에 환자들이 절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고, 완강히 치료나 요양을 거부하게 한다. p242
-> 이 병은 바로 후천성 반미결핍증입니다.
* 공안기관원들이야 상부의 지시가 있어 움직이고, 또 그런 일을 하면 돈이 나오고 진급도 하고 상도 받는데,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 받는 것도 아니고 뻔히 감옥 갈 일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했다는 말을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없는 배후를 만들어내야 했고, 광주 시민의 항쟁은 고정간첩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야 자신과 상급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였다. 양심이라는 것을, 자발성이라는 것을,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한 사람들 간의 전쟁이었다. p251
* 민주사회의 표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중 중요한 하나는 국가나 정부가 국민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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