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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無不爲自然 2013. 2. 25. 23:3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한 편의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아주 긴 한 장의 음반을 들은 기분이다. 무수한 노래들이 소설속에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을 포함하여 소제목도 노래의 제목이다. 소설 속의 음악. 그런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나기도 한다. 젠체하는 어색한 등장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비틀즈의 <블랙버드>를 끝으로 기타도 숨을 죽인 새벽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침묵과... 남아 있던 맥주와... 검은 새의 발자국처럼 거실을 거닐던 시계의 초침(秒針)소리가 생각난다. p150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유머러스한 표현과 세태를 풍자하는 시니컬한 시선이 사랑스럽다.  

 

 줄거리는 다소 황당하다. 흔히 말하는 로맨스 코메디. 아주아주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 그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가꾸기 보다는 주변의 것으로 꾸미고.. 그래서 돋보이고 싶어한다. 그런 결과로 요즘 사람들은 브랜드를 입고 신고 다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과시욕은 불행하게도 사물로 그치는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 까지도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추녀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남자는 없다. 아주아주 슬픈 현실이다.

 

 자주 등장한다고 해야하나? 과거를 회상하듯이 쓴 소설이니만큼 '잊을 수 없다'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아주 사소한 일상들인데 기억속에 각인되어 남아있다니.. 그런게 사랑의 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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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였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었다. p75

 

* 여자에게 말이야... 무정(無情)보다 더 비참한 게 뭔지 아니? 동정이야. p121

 

* 똥을 누면서 느낀 고독감을 설명하다 얘기는 실존으로 이어졌다. 다시 얘기는 [이방인]으로 이어졌고, 알베르 까뮈와... 카프카로 이어졌다. 장담컨대 두 사람은 모두 똥을 누면서 그날의 원고를 구상했을 거야. 두 작가를 키운 것은 똥이였지.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어. 까뮈는 설사였고, 카프카는 변비였어. p136

 

* 인간은 대부부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p156

 

*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219

 

* 딸기밭(Strawberry Fields)이 실은 존 레논의 추억이 서린 고아원의 이름이란 사실 p245

 

*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두렵습니다. 순순한 만큼 쉽게, 어떤 죄책감이나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p269

 

* 숨을 쉬고, 일을 하고... 귀찮아도 밥을 먹고, 견디고... 잠을 잔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삶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