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調

[스크랩] 보르헤스. 후기현대와 불교의 가교/김홍근

無不爲自然 2010. 9. 10. 11:01

보르헤스, 후기현대와 불교의 가교

김홍근 (스페인 마드리드대 문학박사/ 성천문화재단 기획연구실장)

1. 들어가며

내가 보르헤스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어느 책에선가 그의 이런 말을 읽었을 때부터다. "인류의 종교사는 어쩌면 정신착란의 리스트일지 모르고, 모든 경전은 환상문학이다." 나는 이 말을 대하고 큰 해방감을 맛보았다. 알게 모르게 압박받아온 종교와 도덕의 사슬에서 벗어나, 훨훨 나는 듯한 느낌. 내게 사유의 틀을 강요했던 기성 질서의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나를 가둔 벽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 그 당시에는 의심할 바 없는 진리라고 여겨졌던 많은 고대의 믿음체계가 세월이 흘러 지금의 이성적 눈에는 우스꽝스럽거나 엽기적인 미신으로 보이는 것처럼, 우리 현대인이 철석 같이 믿고 있는 가치관이 먼 훗날 미래인의 눈에는 정말 기이한 정신착란으로 보이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가 '후기 현대와 선'이라고 들었을 때, 직감적으로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왜냐하면 후기 현대사상과 선불교의 공통점이 아마 그 해방감에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직관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가 선불교를 유난히 좋아했고, (그래서 그는 죽어서 일본에 묻혔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또한 '후기 현대를 대표하는 작가' 하면 으레 그를 연상하기에, 만일 그가 살아있다면 이 주제에 대해 할 말이 꽤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하고 싶어 했을 말'의 핵심은 기성 사회의 완강한 인식구조를 허물고 새롭고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하려는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되고, 그 점에서 후기 현대나 선은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이런 기대감을 해명해보려는 시도다.
후기 현대가 서구사상의 토대를 이뤄온 이성주의의 건축물을 해체하고자 한다면, 선은 인간에 덮어씌워진 자아라는 미망을 벗기고자 한다. 둘 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인간정신을 속박하는 올가미를 벗고, 당당히 광야에 발을 내디디고자 하는 해방의 외침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후기 현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보르헤스가 여러 불교 종파 가운데서 선불교가 불교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확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20세기의 창조자'라고 불리는 보르헤스의 작품에 후기 현대적 발상의 전환이 배태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한편 보르헤스는 청년기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와 인도사상의 세례를 받고 만년에는 {불교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보르헤스는 후기 현대사상과 불교 사이의 훌륭한 가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이 글은 얼핏 서로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은 후기 현대와 불교 사이에 보르헤스라는 가교를 놓음으로써, 후기 현대사상에 관한 불교적 이해를 모색하고자 한다.

2. 보르헤스는 누구인가?

20세기 후반에 활동하는 전 세계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의 하나이며, 후기구조주의와 해체주의 혹은 후기 현대 등 최근 서구 사상사에서 큰 전환을 이룬 정신적 흐름의 사상적 기초와 인식의 맹아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보르헤스(1899-1986)가 불교 개설서를 직접 저술할 정도로 불교에 깊은 애착과 정통한 이해를 가졌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20세기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들에는 불교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보르헤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市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된 책이 무한히 꽂혀 있는 집안의 도서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할머니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집에선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이 영향으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많은 영미소설을 읽게 된다. 특히 그의 모국어가 스페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문학의 금자탑 {돈키호테}를 영어 판으로 먼저 읽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보르헤스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던 부모님 덕분으로 그는 집에서 가정교사로부터 고급교육을 집중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받았다. 많은 중남미 지식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제3세계인이었으면서도 동시에 유럽인들처럼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성장했다. 이런 특이한 입장 때문에 그는 일찍부터 他者의 존재에 대하여 눈뜨고, 지구상에는 다양한 문명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화적 세계시민(cultural cosmopolitan)이 되었다.
보르헤스는 15세 되던 해인 1914년에 유럽에서의 수술과 요양이 필요한 아버지를 따라 스위스로 이주한다. 그는 제네바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불어와 독어 그리고 라틴어를 익히게 된다. 이때 그는 프랑스와 독일의 문학과 철학을 접하고, 일생동안 문학에 헌신하기로 결심을 굳힌다. 유대신비주의 카발라나 불교에 관한 서적을 읽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다. 1921년 스페인을 거쳐 조국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그는 당시의 새로운 사조인 전위주의(아방가르드)를 반영하는 문학잡지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초기에 당시의 유행에 따라 아방가르드 풍의 시를 썼다. 그러나 곧 자신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성향을 표현하기 위하여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후원으로 특정한 직업 없이 글만 쓰던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해인 1938년 기울어가는 가세를 돕기 위해 시립 도서관에 취직한다. 같은 해 성탄절 전야에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다. 며칠 후 의식이 돌아온 그는 자신의 사고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 씌어진 단편들이 대부분 그의 대표작이 되어 1944년 {픽션}과 1949년 {알레프}에 수록된다. 이 두 단편집은 오늘날 세계문학에서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보르헤시안 환상문학'의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그가 처음 이 작품들을 발표했을 땐, 당시 문학계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들이 너무 시대를 앞서 갔던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던 그는 1961년 사무엘 베케트와 함께 유럽 출판인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특히 프랑스 문단과 철학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다. 이후 보르헤스는 1967년 하바드 대학 '찰스 엘리엇 노튼 詩學 렉춰'에서 강의하고 계속 작품을 발표하는 등 1986년 죽을 때까지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한다.
보르헤스라는 이름은 마치 카프카처럼 이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적 상징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날렵한 직관으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포착하여 짧은 단편소설 속에서 형상화하는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는 많은 독자들을 경이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의 책을 펼치면,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환상 세계가 갑자기 눈앞에 전개되는 것이다. 확실히 그는 현실의 이면에서 숨죽이며 숨어있던 미묘한 초월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이는데 능하다. 그 세계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보르헤스의 붓끝을 통하여 슬며시 이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일종의 깨달음의 顯現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전에 그가 예언했듯이, 작가로서의, 즉 하나의 픽션으로서의 보르헤스는 실제의 개인적인 인물과는 상관없이 유럽과 아메리카, 나아가 전 세계의 지성들에 의해 경이의 대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20세기의 창조자', '환상문학의 창시자', '사상의 디자이너', '중남미의 호머',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바벨탑 같은 작가', '작가를 위한 작가'… 등으로 부른다. 그는 특히 초기에는 일반 독자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소수의 독자에게만 읽히는 작가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그의 글은 관점이 독특하고 난해해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에 시간이 좀 걸리지만, 작가나 사상가들에게는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보르헤스의 문학적 상상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은 매우 독특하지만, 그의 삶은 매우 단순하다. 앞에서 본 바대로, 지성을 숭배하는 제3세계의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책에 파묻혀 살다가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고 평생 글을 쓰다 죽은 것이다. 글 쓰는 일 외에 그가 가졌던 유일한 직업은 도서관 사서와 문학교수였다. 그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책에 둘러싸여 살았고, 소수의 친구들은 작가 아니면 문학잡지 편집자였다. 어쩌면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읽고 쓰고 일하다가, 도서관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묻힐 곳으로 마지막까지 일본과 스위스 중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학창시절 공부하던 제네바를 택했다.
결혼에 실패하고 술과 담배도 못했던 보르헤스의 유일한 취미는 백과사전을 뒤적거리는 일이었다. 樂聖 베토벤이 귀가 먹었듯이, 그는 집안의 유전병과 과도한 독서로 인하여 눈이 멀게 된다. 그러나 失明이 그의 육체적 눈을 가릴 수는 있었지만, 그의 心眼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그의 상상력의 날개는 암흑 속에서 더욱 높고 멀리 날아갔다.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보르헤스는 자신을 모델로 단편 {기억왕 푸네스}를 썼다. 푸네스는 하루를 기억해 내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초기억력자이다. 보르헤스는 이미 외워 버린 백과사전과 많은 책들을 자신의 소우주 속에서 반추하고 또 반추했다. 그 결과 그는 독특한 관점을 지닌 心眼을 얻게 되었고, 자신이 속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 보게 되었다. 20세기의 시대정신은, 옛 전통에 따라, 자신의 대변자로 보르헤스라는 '장님'을 예언자로 선택했는지 모른다. 후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그의 글을 읽다가 영감을 얻곤 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3. 보르헤스와 불교

1976년 보르헤스는 알리시아 후라도의 도움을 받아 {불교란 무엇인가? Que es el budismo?}를 출판한다. 이 책은 필자가 번역하여 한국에선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여시아문 刊)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보르헤스는 젊은 시절부터 심취했던 불교에 대한 애정을 이 책을 통해 표현했는데, 열두 개의 장을 통해 서구의 독자들에게 불교의 요체를 알기 쉽게 압축하여 들려준다. 이 책에 수록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전설상의 붓다
2. 역사상의 붓다
3. 불교에 영향을 미친 사상
4. 불교의 우주관
5. 윤회
6. 불교 교리의 핵심
7. 대승불교
8. 라마불교
9. 중국불교
10. 탄트라불교
11. 선불교
12. 불교윤리

먼저, 보르헤스는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붓다보다는 전설상의 붓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역사상의 붓다라는 인물의 생애는 이미 그 삶의 족적이 드러나 있어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전설상의 붓다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불교예술은 대부분 붓다의 전설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보르헤스에게 붓다의 전설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의 寶庫로 여겨진 것이다. 또한 그는 궁극적 진리는 이성적 논리보다 오히려 신화나 설화 속에 더 잘 표현되어 있다고 보고, 문학도답게 佛傳이나 佛所行讚 등의 문학적 이야기 속에 함축되어 있는 비유나 가르침에 주목한다.
흔히 '환상적 사실주의'의 대가라고 불리는 보르헤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사실적인' 붓다의 일생보다는, 그에 관한 여러 '환상적인' 묘사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혹은 이성으로 파악되는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서구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그는 과연 '무엇이 사실(리얼리티)인지'에 대해 깊이 회의하였다. 그는 불교와 힌두교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으로, 밖으로 드러난 외부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幻影에 불과하다고 하는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진정으로 세계를 리얼하게 파악하려면, 겉만 묘사하는 사실주의로는 안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까지 잡아내는 환상적 사실주의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붓다의 참모습은 그 삶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기록에 있는 게 아니라, 붓다가 도달한 경지를 상상력을 통해 드러낸 문학적, 비유적 표현에 있다는 것이다. 眞空妙有라는 말처럼, 그에게 있어 환상(空)은 세계의 숨겨진 이면과 신비(妙有)를 포착할 수 있는 상상력을 의미했다.
보르헤스는 붓다가 살았던 기원전 6세기를 인류사에 있어 '聖人들의 시대'라고 불렀다. 孔子, 老子, 차라투스트라,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이사야, 예레미야 등이 모두 당시의 동시대인이었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역사상의 붓다를 다루면서 석가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를 비교한다.

서구인의 입장에서는 붓다의 일생과 예수의 일생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불가피 할지 모른다. 예수의 전도생활은 격정적이고도 극적인 사건으로 채워진 반면, 붓다의 전도생활은 인류의 스승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神이 인간의 육신을 취하여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죽었다는 교리는, 태자가 출가하여 成道한 뒤 깨달음의 길을 가르쳤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강열하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불교는 개인의 유일한 인격이라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예수같이 드라마틱한 인물상은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인 無我論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 중 두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내가 그중 세 번째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자기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여라.'고 가르쳤다. 타력신앙과 자력신앙의 차이가 뚜렷하다.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 여시아문, p. 105)

한편 보르헤스는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를 인용하여, 두 종교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인 시간관의 상이함을 지적한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붓다는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이 땅에 나타나는 原形이기 때문에 붓다의 개성적인 모습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一回的이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붓다의 삶과 가르침은 역사적인 주기 때마다 반복되며 고타마는 과거에서 미래로 끝없이 연결되는 거대한 흐름의 한 고리의 역할을 다하였다. (위의 책, pp. 105-6)

보르헤스는 붓다 개인 생애의 기록보다는 그의 정신세계와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보르헤스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는 자아의 정체성 문제이다. 바로 이 점에서 보르헤스는 불교의 '無我思想'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라는 주제는 보르헤스의 단편, 에세이, 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보르헤스는 말하기를, 인간이란 동시에 연극의 배우이며, 연출가이며, 관객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자아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보르헤스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 주제 또한 보르헤스가 인도사상에서 따온 발상이라는 사실이 그가 쓴 {불교란 무엇인가?}에서 암시되고 있다. 그는 불교에 영향을 미친 사상을 설명하면서, 인도 육파철학의 하나인 산키아 학파의 학설을 소개한다.

우리가 본질적으로는 우리 생의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논리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산키아 학자들은 아름다운 비유를 든다. 무용이나 연극공연을 보러 가면 우리들은 흔히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우리들이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한 사람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또 그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컨디션을 함께 한다. 이 친밀한 同居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곧 그 사람이라고 믿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자서전 제목을 {그의 생의 목격자가 이야기하는 빅토르 위고}라고 지었다. (위의 책, pp. 111-112)

그는 {꿈의 책 Libro de suenos} 서문에서, 18세기 영국의 작가 J. Addison이 들려준 꿈 이야기를 한다. 그는 꿈속에서 자신이 동시에 무대 위에선 연기하고, 무대 뒤에선 연출하며, 객석에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매우 의미심장한 비유이다. 우리가 동시에 배우이며 관객이라는 생각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서구 근대철학의 핵심주제인 '근대적 주체(ego moderno)'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었다.
세계의 속성이 幻影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또 다른 중요한 문학적 주제 역시 인도사상에 빚지고 있다. 그가 불교에 영향을 미친 두 번째 사상으로 베단타학파를 소개하는 글에서 세상의 본질이 幻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8세기의 베단타 철학자 상카라의 말을 인용한다.

세계는 무지와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모두 본질의 겉면에 불과할 뿐이라고 상카라는 말한다. 열과 빛이 불의 속성인 것처럼, 마야(幻影)는 신의 속성일 뿐이다. 신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한다면, 환상 따위는 믿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거대한 환영이며 육체, 자아, 창조주로서의 신의 개념 등은 그 환영의 부분적인 모습일 뿐이다. (위의 책, pp. 115-116)

보르헤스는 불교의 윤회설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그는 불교의 윤회설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그리스 철학자들의 윤회설과 비교했다. 보르헤스는 윤회설을 주창한 피타고라스와 엠페도클레스 그리고 플라톤과 플로티누스의 윤회사상을 소개한 뒤, 고대 켈트족의 사제계급인 드루이다와 유태 카발라의 윤회전생론을 인도의 윤회설과 대조했다. 또한 '윤회설이야말로 철학이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고 확신한 데이비드 흄과 쇼펜하우어가 이해한 윤회설을 소개한다. 덧붙여 "나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침대에서/ 잠자던 병사였다"로 시작되는 루벤 다리오의 시도 인용한다.
보르헤스는 불교의 윤회설을 '우주적 차원의 하나의 정밀한 보상제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혼이 윤회한다고 하는 대부분의 서구 윤회설과는 달리, 영혼을 부정하는 불교의 윤회설의 핵심은 業思想에 있다고 보르헤스는 보았다. 보르헤스는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행한 불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1989년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것, 내가 만년에 눈이 먼 것, 오늘 밤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강연하는 것 등 이 모두가 내가 전생에 지은 업의 작용입니다. 현세에서의 나의 행동 중 전생의 행위와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업이라는 것입니다. 업이란 너무도 정교한 정신적 구조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의 어느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인연의 천을 짜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의지, 행동, 잠, 불면 그리고 꿈까지도 이 천을 구성하는 실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그 천을 짜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책, pp. 212-213)

그런데 여기서 보르헤스는 특별히 윤회의 장치로서의 '업'이라고 하는 사상에 주목했다. 그는 업을 정교한, 아주 정교한 정신 구조로 보았다. ("El karma viene a ser una estructura mental, una fin sima estructura mental.") 보르헤스는 그의 {불교란 무엇인가?}에서 '業'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도에서는 전생의 행위가 이 생을 결정하고, 이 생의 행위가 來生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다음 생을 결정하는 행위를 인도 철학자들은 業(karma)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만들다' 혹은 '창조하다'를 의미하는 크리(kri)에서 파생되었다. 업은 우리가 끊임없이 짜나가는 천(織物)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모든 행위, 말, 생각, 그리고 어쩌면 꿈까지도 死後 그의 다음 생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위의 책, pp. 132-133)

쉬지 않고 짜여지는 인연의 천이라는 아이디어는 보르헤스로 하여금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단편소설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을 쓰게 만들었다. 보르헤스는 업이라는 그물구조에서 바로 '시간의 미로'라는 생각을 끄집어낸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보르헤스는 취팽 선생이라는 중국인이 만들었다는 '완벽하게 무한히 계속될 그런 미로'를 묘사한다. 취팽은 그의 편지에서 "나는 다양한 미래들에게 끝없이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남긴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가 남긴 미로는 공간 속에서 무한히 갈라지는 미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의 무한한 갈라지는 미로였던 것이다. 즉 '시간들의 그물'인 것이다.
보르헤스는 붓다가 처음 설법한 불교의 핵심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극동지방에서 가르치는 禪佛敎라고 보았다. 선불교에서는 창시자의 생애를 숭배하고 그가 가르친 교리에 순종하는 것보다는, 신자 개개인이 진리를 깨쳐서 見性成佛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참선을 할 때 몰두하는 주제(話頭) 중의 하나로 붓다의 존재를 의심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보르헤스는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선불교와 기독교 및 이슬람 신비주의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서 여섯 가지 유사점을 예로 들었다.

첫째, 수단에 불과한 논리적 圖式을 믿지 않는다. 수십 권의 '神學大典'도 진리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감각을 통한 인식보다는 직관을 더 선호한다. 셋째, 논리적 甲論乙駁을 초월하여 결정적 확신을 안겨주는 絶對智를 추구한다. 이것을 파악한 사람은 인습적인 前提나 決論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는 현 단계에서의 사물들의 대립관계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는 모두 통합된다는 것을 인지한다. 따라서 세속적인 도덕 윤리관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넷째, 에고의 소멸을 말한다. 과거의 개인적인 삶은 전체 속에 용해되고, 그때 평화와 法悅이 보상처럼 따라온다. 다섯째, 자아와 삼라만상이 모두 일체감을 가진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는 이렇게 노래했다. "모래알 속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 속에서 하늘을 본다. 너의 손바닥 안에 깃든 無限과 찰라 속에 깃든 永遠을 보라!" 여섯째,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위의 책, pp. 188 189)

이어 그는 언어와 변론을 믿지 않고 바로 깨달음에 다가서는 선불교적 사고방식에 의해 탄생한 극동, 특히 일본의 문화에 대해 언급한다. 신중한 생략과 암시를 생명으로 하는 건축, 회화, 書道, 정원 가꾸기, 꽃꽂이, 茶道 등에 드러난 餘白美와 禪味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시인답게 일본의 短歌 형식에서 종장을 생략한 하이쿠(俳句)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여러 편을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그는 하이쿠를 '갑자기 눈앞에 피어난 꽃봉오리'라고 불렀다. 여기 그가 번역한 하이쿠 몇 편을 소개한다.

바람에 너울대는/ 풀잎 끝 이슬방울/ 덧없는 인생

인형가게에 들린/ 자식 없는 부인/ 만지작만지작 인형을 못 놓네

강물에 출렁이는/ 벚꽃 그림자/ 떠내려가진 않네

난간에 기대어/ 가을 달을 보니/ 내 本來面目
 
이 이외에도 보르헤스는 그의 {불교란 무엇인가?}에서 '불교교리 전법륜', '대승불교', '라마불교', '탄트라불교', '중국불교', '선불교'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이런 다양한 불교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것들을 항상 서구의 사상과 대조하여 언급함으로써, 그가 불교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었나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르헤스는 불교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 정신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는 {불교란 무엇인가?}의 곳곳에서 에드워즈 콘즈, 파울 도이센, 아더 월리, 다이세쯔 스즈끼 등 다양한 불교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가 알렙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불교는 그에게 단순히 신비한 이방문화가 아니라 바로 '구원의 길'이었다.

4. 후기 현대와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정의하기 모호, 난해하며 매우 한시적인 개념이라는 점 때문에, 보르헤스 자신이나 그의 문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보르헤스의 문학을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안에 묶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어쨌든 미국과 프랑스의 많은 비평가들은 보르헤스를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관하여 연구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는 그 연구의 대표적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미국 플로리다 어틀랜틱대 교수 낸시 케이슨 폴슨의 저서 {보르헤스와 포스트모더니즘 움직이는 거울과의 유희}(한국에서는 2002년 {보르헤스와 거울의 유희}로 번역, 태학사 刊)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멕시코국립대의 이그나시오 디아스 루이스Ignacio Diaz Ruiz 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전통적 문학 장르를 파기하고 새롭게 만들어낸 보르헤스의 글쓰기 형식을 나열한다. "각주의 형태로 위장된 시, 서평 뒤에 숨은 이야기들, 단편소설로 변형된 비평에세이, 시가 되는 묘비명, 단편소설로 위장된 문학이론, 픽션이 되는 뉴스, 문학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전기물, 장르의 부정과 전복, 문학의 전통 방법론을 자의적이고 유희적인 예술로 변형시키는 환상적 동물분류법."(위의 책, p. 7) 루이스 교수는 이어 보르헤스의 문학에 매료되어 그의 환상성을 연구한 비평가들을 소개하면서 보르헤스 문학이 보여주는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보르헤스 문학의 핵심적이고도 근본적인 개념으로서 환상성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이상적인 열쇠가 된다. 츠베탕 토도로프, 이레네 베시에르, 로즈마리 잭슨, 아나 마리아 바레네체아, 랩킨,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에미르 로드리게스 모네갈, 하이메 알라스라키 그리고 로저 카이유와 등의 비평가들이 비평적 잣대를 가지고 보르헤스 문학의 광대무변한 환상적 구조를 연구하여 그 환상성을 규정한다. 초자연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동, 현실 경계의 끊임없는 넘나듦, 기이한 것의 집착, 사실주의적이고 미메시스적인 것에 대한 천성적인 거부 등은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특징들이다. 이는 모두 20세기 문학에서 거의 구사되지 않았던 문학적 개념들의 목록인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 교수는 보르헤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유럽과 아메리카 지식인들의 명단을 소개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20세기 후반의 세계 비평계를 이끈 기라성 같은 면면들이다.

보르헤스가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과 작용 그리고 도발은 다음과 같은 지식인들과 그들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리스 블랑쇼의 {미래의 책}, 제라르 쥬네트의 {문채},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 등등. 이밖에도 자크 데리다, 로제 카이유와, 클로드 올리에, 장 리카르 등의 지식인들. 이들은 보르헤스의 원리, 사상 그리고 방법을 취하여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서 그들만의 이론을 만들고 고유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한편 폴 드 만, 존 업다이크, 존 바스, 존 스타크, 로날드 크리스트, 조프리 그린 등도 역시 글을 쓰면서 보르헤스로부터 결정적인 영향과 강한 계발을 받았다. 미국의 글쓰기와 창작에 끼친 다양한 요소와 도구들은 새로운 전환기를 형성하였다. 보들리야르, 그라프, 리오타르, 포케마 등 저명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과 보르헤스의 미학적 특성간의 대립은 오히려 보르헤스 글쓰기의 혁신적이고 선구자적인 성격을 돋보이게 한다. (위의 책 p. 9 10)

저자 폴슨 교수는 보르헤스가 세계문학사에 기여한 가장 커다란 공로로 '환상문학의 혁신'을 꼽는다. 보르헤스의 환상성은 단지 문학에서의 사실성을 문제 삼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완전한 사실적 묘사라는 사실주의의 꿈을 전복시킨다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문학에서 환상은 수시로 현실로 침투하여 기존 질서를 뒤집고 자연법칙을 파괴하여 독자를 낯설고 어리둥절한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보르헤스의 텍스트는 픽션의 자족성을 추구함으로써, 텍스트 외적인 현실은 중요성을 잃고,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만다. 폴슨 교수는 "보르헤스가 자신의 소설 속에 근대성과의 단절을 창출해내기 위해 환상문학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서구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위의 책, p. 31)
프랑스 현대작가와 사상가들에게 미친 보르헤스의 영향은 지대했다. 보르헤스를 프랑스에 처음으로 소개한 드리외 라 로셀은 1932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고 돌아와 보르헤스를 발견한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와 모리악은 1957년 "아직도 자연주의에 기대고 있던 프랑스 작가들에게 보르헤스는, 예를 들어, '미로'라는 초자연적인 공간에 눈뜨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모리스 블랑쇼는 {미래의 책}에서 형이상학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인 '무한'이라는 개념과 지시대상과 언어가 구분되지 않는 '우주로서의 책'이라는 새로운 사고로 젊은 작가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고 지적한다. 1962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정부의 문학예술 훈장을 보르헤스에게 수여했다. 1964년 {카이에 드 레른느} 誌는 당대의 프랑스 비평가들의 글을 모아 보르헤스에게 바치는 특집호를 발행했다. 제라르 쥬네트는 {문채}에서 보르헤스의 작품 [피에르 메나르, 동키호테의 작가]를 통하여 독자의 해석학적 수용에 대해 눈뜨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비평가 장 리카르두는 {미로의 신}에서 로브 그리예, 뷔토르, 클로드 시몬 등의 프랑스 작가들이 '미로의 신'인 보르헤스로부터 받은 영향을 지적한다.
보르헤스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론의 발전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명확히 증명해준 작품은 아마도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일 것이다. (이 책에 관해선 뒤에 자세히 볼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그는 영어로 쓴 {언어, 반기억, 실천}이라는 에세이집에서는 "모든 작가는 자신의 선구자들을 생성해 낸다."는 보르헤스의 문구를 題辭로 쓰면서 다시 한번 보르헤스를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한다. 뿐만 아니라, 메타픽션의 시각에서 보르헤스의 [비밀의 기적]을 분석한 '영원으로의 언어'라는 글에서도 푸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보르헤스를 언급하였다.
푸코에 대한 언급은 자연히 데리다의 差延을 떠올린다. 데리다는 1961년에서 62년에 걸쳐 보르헤스를 처음 읽었으며, 1968년 "보르헤스에게 끌려" 다시 꺼내 읽었다고 한다. 데리다는 {글쓰기와 차이}에서 보르헤스의 [파스칼의 球體]에 나오는 두 문장을 인용한다:우주의 역사는 수많은 은유의 역사일 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역사는 몇몇 은유의 다양한 변종의 역사일 것이다." 이 말은 '미미한 차이의 반복, 즉 보완적인 반복'이라는 데리다의 고유한 문학기법을 대변해주고 있다. (위의 책, p. 38-9 참조)
데리다의 {산종}(1972)에 실린 [플라톤의 약국]에도 보르헤스의 글 두 개가 題辭로 실려있다. 보르헤스의 글에는 '도서관', '무한성', '다시 쓰기', '현실과 시간 개념의 의문' 등의 용어가 나오는데, 이것으로부터 데리다는 신의 정체성과 글쓰기의 문제, 정체성을 전복시키는 글쓰기의 역할 등의 주제를 이끌어 낸다. 전형적인 보르헤스적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작가들에게 끼친 보르헤스의 영향 또한 프랑스에 대한 영향 못지않다. 1964년 폴 드 만Paul de Man은 [뉴욕 북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보르헤스의 픽션 세계가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지적인 가설'이라고 특징짓는다. 그리고 그 가설은 '무서운 무한을 표현하는 거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 거울은 작가의 시적 복제를 가능케 하여 유사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듬 해 존 업다이크는, 문학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제안하는 보르헤스의 소설적 혁신은 미국 작가들에게 당시의 정체된 문학의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르헤스의 픽션은 현대 소설이 당면한 필요성 인공물로서의 자기 성격을 고백할 필요성 에 대한 응답을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위의 책, p. 41-42 참조)
1965년 아나 마리아 바레네체아의 {보르헤스, 미로의 제작자Borges, The Labyrinth Maker}가 뉴욕에서 출판되어 영어권 지식인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년 뒤, 존 바스는 [고갈의 문학]에서 미국작가들의 고갈된 문학에 보르헤스가 탈출구를 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독창적인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한 글인 보르헤스의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작가]를 분석하면서, 문학의 진정한 실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보르헤스의 노고를 칭송한다. 즉, 기존의 문학이 의존해온 작가의 오리지날리티와 상상력이 고갈되고 바닥난 상황에서 또 다시 새로움과 창조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해나가는 것이 문학 자체'라는 인식을 일깨움으로써 창조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해소시키고, 해석의 다양성을 통한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눈뜨게 해준 보르헤스를 고마워하는 것이다. 존 바스는 1980년 [소생의 문학]에서 '고갈에서 소생으로' 전환하는 문학의 혁신에서 보르헤스가 담당했던 핵심적 역할을 되풀이해서 언급한다.
바스의 글이 출판되면서, 바스와 로버트 쿠버, 토머스 핀천, 업다이크, 혹스, 드릴로 등 동시대의 미국작가들 사이에서 보르헤스의 영향을 언급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또한 존 스타크와 로버트 크리스트, 죠프리 그린 등의 평론가들도 보르헤스를 빈번하게 인용했다. 특히 후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픽션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콘템포라리, 자기반영, 후기구조주의 아니면 해체주의라고 부를 것인가? 내가 앞서 언급한 것들의 성질 비현실의 의미, 자기반영성, 지각의 주관성, '나'와 객체의 분리, 장르 구별의 혼동, 의미의 불확정성, 텍스트적 세계의 해석학적 장으로서의 세계, 문학형식의 고갈, 상호텍스트적인 반향 을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성질을 발견할 수 있는가? 또는 이 시대의 보르헤스의 목소리와 자취를 인정하는가? (위의 책 p. 44-45에서 재인용)

포케마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가 이용하는 서술전략인 이야기의 복제, 대체, 나열, 파편화, 자기반영, 불연속성, 과잉, 양피지 이론 등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거울, 미로, 지도, 백과사전, 목적지 없는 여행 등으로 상징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형태로 글을 쓰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중남미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북미문학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문학적 코드라고 말할 수 있고, 그 새로운 코드의 창조와 수용에 이바지한 대표적인 작가는 보르헤스라고 강조한다. (위의 책, p. 50)
토머스 쿡시Cooksey는 데리다와 그 후계인 예일학파(드 만, 하트만, 블룸)가 강조한 '언어의 의미 중심의 부재 현상'을 보르헤스의 픽션을 포스트모더니즘적 읽은 핵심으로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단일한 어떤 중심으로부터도 자유로움으로서 언어는 거울들의 복도로 던져지며 거기서 자의적인 기호들은 무한한 대체의 과정에서 서로를 반영하고 스스로 반영된다." (위의 책, p. 52)
제랄드 마틴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보편화에 대한 보르헤스의 공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작가나 독창성에 대한 개념뿐만 아니라 읽기와 글쓰기기의 과정을 탈신화화함으로써 문학 전반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독보적이고 혁명적으로 변화시킴 2) 사상, 언어, 문학 그리고 문화가 가진 물질적 속성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 3) 라틴아메리카인으로서의 보르헤스가 서구문학과 비평에 끼친 혁명적인 충격. (위의 책, p. 56)

5. 혼재향과 화엄세계

이제 보르헤스와 불교, 그리고 보르헤스와 후기 현대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가 끝났으니, 그를 매개로 후기 현대와 선불교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살펴보자. 제일 먼저 다룰 주제는 후기 현대의 중요개념으로 미셀 푸코에 의해 제기된 '混在鄕(Heteropia)'을 선불교의 화두가 지향하는 공간과 비교하는 것이다. 보르헤스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깊이 연구한 폴슨 교수는 푸코의 혼재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푸코는 자신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보르헤스의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 나오는 중국 백과사전에 대한 인용문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푸코는, 이 글에 나오는 동물 분류를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또 다른 사고체계로부터 낯선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런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출발하여 푸코는 언어의 'no-place'라는 의미에서의 '混在鄕heterotopia' 개념을 만들어 낸다. (위의 책, pp. 37-38)

이상향Utopia에 비교되는 혼재향Heterotopia은 여러 개의 존재가 하나의 공간 안에 혼재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따라서 오리지날리티가 부정되는 개념이다. 말과 사물이 1:1로 대응되는 시대가 지나감으로써 근원으로서의 언어는 부정되고, 말은 사물로부터 독립되어 실체 개념 없이 스스로 기표로서 존재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인터넷 온라인상의 언어가 얼마나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미지가 사물이 아니라 다른 이미지로부터 계속 카피되고 混成되어 널리 유통되는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미셀 푸코는 '여러 개의 존재가 하나의 공간 안에 혼재해 있는 것'을 가리켜 '혼재향'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의미를 보다 포괄적으로 확대해 볼 때, 이것이 지향하는 바는 이성주의에 기대어 온 현대인의 일상과 상식에 가려져 있는 이질적인 의식공간이다. 그 공간은 일상 언어로 포장되어 있는 상식적인 사유체계로부터 일탈하였을 때만 다다를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이다. 먼저 푸코가 보르헤스의 글을 읽다 혼재향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는 대목을 살펴보자.

이 책의 발상은 보르헤스에 나오는 한 원문으로부터, 그 원문을 읽었을 때 지금까지 간직해온 나의 사고 우리 시대와 풍토를 각인해 주는 <우리 자신의> 사고 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린 웃음으로부터 연유한다. 그 웃음과 더불어, 우리가 현존하는 사물들의 자연적인 번성을 통제하는 데 상용해온 모든 정렬된 표층과 모든 평면이 해체되었는가 하면 오래전부터 용인되어 온 동일자와 타자 간의 관행적인 구별은 계속 혼란에 빠지고 붕괴의 위협을 받았다. 이 원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공폭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주전자를 깨트리는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처럼 보이는 동물> ({말과 사물}, 민음사 刊, p. 11)

푸코가 인용한 이 보르헤스의 글은 물론 실제로 중국의 백과사전에 나오는 게 아니라 작가가 억지로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글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磁場의 공간으로 푸코가 발을 들여놓았을 때, 푸코는 전기에 감염된 듯 짜릿함을 느끼고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포복절도했다는 것이다. 당혹감. 과학주의에 길들여진 사고를 깨부수는 강력한 망치. 그 충격은, 귀를 멀게 하는 禪師의 할처럼, 푸코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편협된 사고의 틀 속에 갇혀있나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 틀은 자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공통된 사고방식의 틀이기도 했다. 보르헤스의 조롱과 장난은 일종의 화두가 되어 그 숨겨진 의미를 알아듣는 한 지성을 일깨우는 棒의 역할을 한 것이다. 새로 눈을 뜬 푸코 앞에 펼쳐진 공간은 이성주의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전혀 이질적인 것이었다. 푸코는 그곳을 '헤테로피아'라 명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유토피아>는 위안을 준다. 비록 그것이 어떠한 실재적인 장소를 점유하고 있진 않더라도 그것이 전개될 수 있는 불가사의한 균질의 공간이 있다.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은 공상적일지라도 유토피아는 거대한 가로수 길과 훌륭하게 꾸며진 정원을 갖춘 도시들, 살기 좋은 나라들을 개방시킨다. 혼재향heteropia은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밀리에 언어를 침식해 들어가며, 이것과 저것을 명명할 수 없게 하며, 공통 명칭을 분쇄하거나 혼란시키며, 미리 <통사법>, 즉 우리가 문장을 구성하는 통사법뿐만 아니라 말과 사물들(상호간에 가까우며 동시에 대립하는)을 <결합시키는> 덜 명확한 통사법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유토피아가 우화와 언동을 허용하는 이유이다. 유토피아가 언어의 정당한 선상에, 즉 <이야기>의 기본적인 차원을 이루는 반면, 에테로피아(보르헤스에게서 간혹 발견되는 것과 같은)는 대화를 고갈시키고, 단어를 그 자리에서 멈추게 하고, 문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문법 자체의 근원에서부터 이의를 제기한다. 에테로피아는 우리의 신화를 해체시키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의 서정을 고갈시킨다. (위의 책, pp. 14-15)

에테로피아에 대한 푸코의 설명을 듣노라면, 마치 禪家의 언어세계에 대한 묘사를 듣는 것 같다. '언어를 침식하고, 이것과 저것을 명명할 수 없게 하고, 통사법을 붕괴시키고, 대화를 고갈시키고….' 선방의 주련으로 걸려있는 "이 문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가 지적하는 대로, 禪門 밖이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면 선문 안은 우선 에테로피아를 지향한다. 화두는 新參者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선입견을 모두 해체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출가 전 사회에서 가졌던 안정과 균질에 바탕을 둔 유토피아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선의 세계에 근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두는 신참자를 알음알이가 끊어진,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기에 혼란스러운 곳으로 몰고 간다. 기성의 인식체계에 물든 사유를 일깨우기 위해 모든 언어의 길을 끊어버린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진퇴양란의 궁지에 가두어 버린다. 은산철벽과도 같고, 백척간두와도 같은 그곳은 보르헤스가 만들어내고 푸코가 이름 붙인 이질적인 지평, 즉 에테로피아 같은 곳이다.
보르헤스의 작품에는 이러한 異種混合的인 혼재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단편 [타자]의 무대가 그것이다. 70세의 보르헤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찰스 강변에 있는 어느 벤치에서 19세의 젊은 보르헤스를 만나는데, 후자는 제네바 로다노 강의 벤치에 앉아있는 중이었다. 두 개의 시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동일한 벤치라는 작품 공간은 푸코가 지적한 혼재향의 전형적인 무대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합류하는 무대로 강변이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 봐둘 요소이다.
이런 혼재향은 특히 꿈을 통해 자주 등장하는데, 보르헤스가 자주 인용하는 혼재향의 예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콜리지의 꿈 이야기이다. 보르헤스는 [콜리지의 꽃]이란 글에서, '꿈에 천국에 간 사람이 그 증거로 꽃을 받아 쥐는데, 꽃에서 깨어보니 실제로 손에 꽃이 들려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기이한 혼재향의 이야기가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며 묘한 흥미를 끄는 이유는 그것이 비단 픽션 속에서의 사건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존재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혹 거울 속에서 낯선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경험하는 우리들은 현실 속에 침투한 혼재향에, 즉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기이한 틈새에 처할 때, 문득 '자아(Ego)'가 한갓 허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보르헤스에게 '거울'이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혼재향이 단순히 가상적인 공간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부에 있으며 우리의 인격 자체가 하나의 혼재향이라는 것을 그는 암시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 속에 관객과 배우가 혼재하는 다중 정체성이라는 것을.
보르헤스는 84세에 다시 한 번 노인 보르헤스와 청년 보르헤스를 만나게 하는 소설 [1983년 8월 25일]을 쓴다. 이 소설은 앞 소설의 양피지에 해당한다. ('양피지'의 의미에 대해선 뒤에 자세히 다룬다.) 푸코는 {말과 사물}을 끝내면서 우리 현대인들이 너무도 당연시하고 있는 '자아'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 사상의 고고학이 쉽게 보여주듯이, 인간이란 근대의 발명품이다. 또한 아마도 곧 종말을 고할 발명품이기도 하다. 만일 그러한 발명을 낳은 지식의 배치가 나타났을 때처럼 불현듯 사라진다면, 만일 18세기 말 고전사상의 기반이 그랬듯이 어떤 사건이 일어나 그 배치를 산산조각 나게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 이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확실히 내기를 걸 수 있다. 마치 바닷가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이 사라지듯이. (위의 책 p. 140에서 재인용)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왜 보르헤스는 그런 '에테로피아'의 공간을 창조하기에 몰두하는가?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얼핏 보기에 혼돈스러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 부정적인 상황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 보르헤스 문학의 위대성이다. 마치 선가에서 신참자들을 극심한 혼돈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 단순한 부정적인 고문이 아니라, 에고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며 진정한 본래면목이 따로 있으니 빨리 깨어나 실체를 직시하라는 깨달음에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르헤스가 에테로피아를 창조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진부한 그림자놀이에서 깨어나 보다 성숙한 세계에 눈을 뜨라는 의도가 숨어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평론가들은 에테로피아를 혼돈스런 상태로 생각하는데 쉽게 머문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심취했던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에테로피아는 단순히 혼돈상태가 아니라 그 이면은 매우 긍정적인 얼굴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보르헤스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마치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죽음이 곧 삶이 되는 것처럼. 예를 들어, 그의 작품 [타자]에서 젊은 보르헤스가 늙은 보르헤스를 만나는 것과 같은 장면은 불교에서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이 펼친 해동 화엄종을 계승, 발전시킨 그의 제자 지통이 깨달음에 이른 고사는 에테로피아의 긍정적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부석사에서 의상의 문하에 들어 화엄경을 배운 후, 홀로 태백산에 들어가 토굴을 짓고 정진했다. 어느 날 그는 기도 중에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미륵불 전에 기도를 드리다가 기척이 나 문득 밖을 내다보니 멧돼지 한 마리가 토굴 문밖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이 환히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직관적으로 그 멧돼지는 자신의 전생이고, 현생은 지통이며, 내생에는 미륵불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그 장소는 상식의 유토피아가 파괴된, 일종의 에테로피아였던 것이고, 그곳에서 지통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 三生이 한 순간에 겹쳐진 체험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상은 그를 인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에테로피아를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는 의도가 잘 나타난 작품은 보르헤스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알렙]이다. 이 작품은 불교에 심취했던 보르헤스의 면목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그는 {보르헤스의 불교강의}에서 특히 싯타르타 태자가 보리수 아래서 正覺을 이루는 장면에 주목하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홀로 나무 아래 정좌한 싯다르타는 순간적으로 자신과 모든 중생의 수많은 전생을 보았다. 한눈에 우주 구석구석의 수많은 세계를 全觀하였다. 그 뒤 因과 果의 사슬도 모두 보았다.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 p. 93)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뤄 붓다가 되는 이 장면은 보르헤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바로 한 인간이 자신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지는 시공간을 뚫고 피안으로 비상해 본 경험을 증명하는 묘사이기 때문이다. 정각의 순간 붓다가 본 것 중의 하나는, 공간적으로 우주에 가득 찬 모든 것(諸法)이 시간의 변화를 통해 변화해 가는 모습이었다. 즉 因과 果의 연쇄가 치밀한 사슬을 이루고 있다는 진리를 자각했던 것이다. 보르헤스는 후에 유태 신비주의 카발라에서도 초월 경험의 묘사가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무튼 보르헤스는 불타의 정각장면을 소설화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서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알렙]이 탄생했다. 보르헤스는 [알렙]을 쓰기 전에 먼저 같은 책에 수록되는 [神의 글Escritura de Dios]을 썼다. 이 단편에서 보르헤스는 마야족의 사제인 치나깐이 감옥 속에서 '神의 글'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묘사는 보르헤스가 붓다의 成佛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神性과의, 우주와의 합일이 일어났다. 무아경은 똑같은 상징을 되풀이 하면서 나타나지 않는다. 즉, 빛 속에서 신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칼이나 장미꽃의 둥그런 형상에서 신을 본 사람도 있다. 나는 지극히 높은 바퀴를 보았다. 그것은 내 눈앞에, 뒤에, 또는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 동시에 있었다. 그 바퀴는 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불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비록 그 둘레가 보이기는 했지만) 무한했다. 미래에 있을 것이고, 현재에 있고,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짜인 채 그것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 총체적인 구도 속에서 한 오라기의 실이었고, 그리고 내게 고문을 가했던 뻬드로 데 알바라도는 또 다른 실 한 가닥이었다. 거기에는 원인들과 결과들이 함께 있었고, 모든 것을 영원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바퀴'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오, 사고하거나, 느끼는 것에서 오는 기쁨보다 더 거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 나는 우주와 우주의 심오한 구성 방식들을 보았다. ({알렙}, 민음사, pp. 169-170)

여기서 보르헤스가 사용하는 용어에서 불교의 영향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주인공이 '바퀴'를 보았다고 했다. 바퀴(輪)는 붓다가 설한 진리를 상징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흔히 '설법했다'를 '法輪을 굴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모든 곳에 동시에 있었다거나 그 수가 무한했다라고 묘사하는 것은 화엄적인 세계관의 표현과 일치한다. 붓다가 성도한 깨달음의 내용을 후에 붓다 자신이 정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화엄경}에는 의상대사가 그의 {華嚴一乘法界圖}에서 노래한 '一中一切 多中一'의 세계관이 펼쳐진다. 화엄경 [入法界品]에는 善財(숫다나) 동자가 오랜 순례 뒤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全觀한 장엄세계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위의 보르헤스의 표현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바퀴는 탑으로 비유된다.

탑은 하늘과 같이 넓고 광대하다. 그리고 광대하며 정교하게 장식된 이 탑 안에는 또한 수백수천의 탑들이 들어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탑들도 원래의 탑만큼이나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고 하늘 같이 광대하다. 그리고 숫자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 모든 탑들이 전혀 따로따로의 방식대로 서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탑들은 나머지 모두와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그 나름의 개별적 존재성을 보유하고 있다. (…) 젊은 순례자 선재는 각개의 탑 하나하나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탑들 속에서, 즉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각각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런 곳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F.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p. 343에서 재인용)

불교에서는 이 화엄의 세계를 비유하여 '동산에 달이 뜨니 모든 강물 위에 비치리라(月印千江)' 혹은 '달빛이 바다 위 가득한 모든 잔물결 위에 반사된다(海印)' 등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마치 달빛이 모든 이슬을 비추고 동시에 커다란 달이 작은 이슬 속에 머금어지는 것과 같다. 선생의 눈에는 모든 학생이 다 비치고, 각 학생의 눈마다 선생 또한 비치는 경우와 같다. 인도에서는 이것을 '인드라의 그물'로 표현하는데, 그 그물의 그물코는 진주로 되어 있어서, 하나하나의 진주에는 전체 진주가 다 투영된다는 것이다. 모두 天人合一(유교)이나 梵我一如(힌두교)의 경지를 상징한다.
'월인천강'이 전체와 부분이 卽合하는 것에 대한 공간적인 비유라면, 의상대사는 그의 화엄일승법계도에서 시간적으로 '한 순간이 곧 무한 시간(一念卽是無量劫)'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찰나 속에 깃든다(九世十世互相卽)'고 노래했다. 이 말은 과거의 모든 시간이 현재에 연결되고 현재 또한 미래의 모든 시간과 연결된다는 연기사상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지통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것을 {법화경}에선 이렇게 표현했다. "전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서 내가 받는 것을 헤아려 보면 되고, 내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서 짓고 있는 업을 자성해 보면 된다.(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
한편 보르헤스는 그 바퀴가 과거, 현재 미래에서 서로 얽힌 채 원인과 결과가 함께 한다고 묘사했다. 즉 깨달음을 통해 본 우주의 심오한 구성방식이란 원인과 결과의 결합방식이라는 것이다. 바로 붓다가 깨닫고 난 뒤 처음 설법한 내용 중의 하나인 연기법, 즉 因緣所起(흔히 十二緣起로 말해진다)를 보르헤스는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직접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썼을 뿐 아니라 또한 말년에 자신이 평생 집착한 주제 일곱 개를 선정하여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한 문학 강연에서 어김없이 불교를 그 하나로 택했던 것이다. 그 강연의 마지막에 가서 보르헤스는 "불교는 나에게 있어 구원의 길이었다. Para m  el budismo no es una pieza de museo: es un camino de salvaci n." 하고 고백했다.
보르헤스는 석가의 깨달음의 세계를 더욱 치밀하게 묘사해 보고자 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알렙]은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다. 보르헤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그는 죽은 애인의 사촌인 어느 미친 시인의 집 지하실에서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물체를 본다. 깜깜한 지하실에서  빛나는 발광체를 보는 순간을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때 나는 알렙을 보았다. (…) 그 거대한 순간에 나는 수백만 가지의 황홀하거나 잔혹한 장면들을 보았다. 정말 놀라운 일은, 그 많은 장면들이 한 점에서 한 순간에 보았는데도, 서로 겹치지도 않았고, 투명한 실루엣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본 것은 한번에 보았는데, 글로 쓰자니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할 수밖에 없다. (…) 알렙의 직경은 2~3센티미터 밖에 안 되지만, 우주 전 공간이 축소되지 않고 거기 있었다. 각각의 사물의 개수는 무한했는데,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달이 복수가 되는 것처럼) 나는 우주의 모든 지점에서 그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으며, 너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울고 말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그 이름을 남용하지만 결코 본 일이 없는 玄玄한 가상의 대상, 즉 불가해한 우주를 내 두 눈이 보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전집} I, p. 625, 필자 번역)

보르헤스의 서술은 소설속의 평범한 묘사를 뛰어 넘는 직관이 담겨있다. 그것은 번개같이 짧은 순간에 우주의 신비를 깨친 어느 覺者의 체험담 같기 때문이다. 그는 그 무한 시공간체의 이름을 '알렙'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로 흔히 문명의 기원을 상징하며 또한 神性을 담고 있는 글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위의 묘사로 보아 그도 붓다처럼 우주적 秘義를 엿본 체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흔히 은산철벽처럼 오도가도 못 하는 혼란스런 궁지를 일컫는 에테로피아의 뜻이 보다 차원 높게 해석되어 일상의 3차원을 넘어서는 4차원의 화엄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를 통해 살펴보았다.
보르헤스는 이성이 건설한 가공의 공간인 유토피아에 매혹되어 그것의 건설에 매진했던 현대인에게 이성을 넘어서는 보다 성숙되고 현묘한 세계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따라서 우선 그리로 지향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 속에 환상을 끌어들여 시공간의 균열을 일으켜 독자로 하여금 과거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도록 하고, 나아가 보다 조화로운 세계의 존재를 열어 보이기도 했다. 푸코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를 혼재향으로 불렀지만, 아직 어느 평론가도 혼재향을 넘어선 '알렙'의 세계를 따로 명명하지 않았다. 이름이야 어쨌든 (보르헤스의 의견대로 '알렙'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 세계는 화엄적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혼란스럽고 어쩌면 한시적인 개념인 후기 현대를 넘어서 다가올 시대를 규정할 이름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서구가 해체주의를 거쳐 보다 성숙한 세계관에 다다를 것이고, 그때 그 세계관은 화엄적인 모습을 띠지 않을까,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6. 독서의 미학과 佛經 저자의 문제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 배태된 중요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맹아 중의 하나는 '독서의 미학'이다. 수많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공유하는 관심사가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소멸'에 대한 미셀 푸코의 선구자적 확신이나 '저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롤랑 바르트의 언급은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를 요구한다. 문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호성과 의미의 복수성 때문에, 독자는 텍스트에서 많은 의미를 발견하면 할수록 독서의 기쁨은 배가된다.
롤랑 바르트는 {S/Z}(1970)에서 읽히는 텍스트와 쓰이는 텍스트를 구분한다. 읽히는 텍스트가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도록 제한하는 경향이 있는 사실주의적 픽션을 말하는 반면, 쓰이는 텍스트는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의미를 해석해내도록 독려하는 텍스트를 말한다. 이 텍스트는 독자에게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를 요구하고, 언어의 본성에 대해서도 질문하도록 만든다. 그것을 쥬네트는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의 책은, 마치 고통을 동반하는 계시처럼, 한 번 주어지면 영원히 변치 않는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의미의 창출을 기다리는 형식들이 쌓여져 있는 것이다." ({보르헤스와 거울의 유희}, op. cit., p. 90)
1935년에 이미 보르헤스는 그의 초기 작품인 {오욕의 세계사}서문에서 '글쓰기보다 독서가 더 지적인 행위'라고 확신했다. 그는 [버나드 쇼에 관한 단상]에서, "책은 격리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다. 그것은 수많은 관계들의 축이다. 하나의 문학은 텍스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읽혀지는 방식에 따라 이전이나 이후의 다른 문학과 변별된다."고 말했다.
독서를 독자와 텍스트 사이의 대화로 여기는 그는 또한 창작 과정을 일종의 '독서행위'로 여기기도 한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작가가 우주라는 책을 읽어낸 기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 독서는 작가라는 독자가 우주를 읽어낸 독서행위를 再讀하는 것이 된다. 그는 [죽지 않는 사람]에서 '한 사람은 곧 모든 사람들이며, 따라서 작가, 번역가, 그리고 독자는 궁극적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따라서 보르헤스는 번역가의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가나 독자나 모두 넓은 의미에서 번역가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천일야화의 번역가들], [카프카와 선구자들], [호머의 판본들] 같은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수잔 질 레빈Suzanne Jill Levine은 이렇게 말한다. "보르헤스는 번역이 글쓰기뿐만 아니라 독서의 모델이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보르헤스는 권위와 독창성이 훼손되어버린 개념(창작의 오리지날리티와 전능한 작가 등)들보다 독자의 컨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에 더 큰 중요성을 부과하는 수용미학을 예견하고 있다." 로드리게스 모네갈Rodriguez Monegal은 '주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꿈꾸어진 존재'라는 인간관을 가진 보르헤스 같은 작가에게 '문학 생산은 창조가 아닌 반복이고, 창작이 아닌 개작이며, 글쓰기가 아닌 독서'라고 지적한다. (위의 책 p. 92) 그것을 보르헤스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인 하이메 알라스라키Jaime Alazraki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보르헤스가 옛 신화들, 동기들, 장소, 그리고 문학적 의미에서의 메타포까지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마도 문학 작업이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새롭고 독창적인 것의 탐색이 아니라 옛 것을 지각하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고 기존의 문학과 관련하여 창조되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옛 것을 새롭게 하고, 진부한 것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은 새로운 시각으로 이전의 텍스트들을 읽는 능력에 달려 있다. 오래된 텍스트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능력이다. 신성한 문자를 기반으로 모든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카발라주의처럼, 보르헤스는 새로운 문학을 쓰는 것은 곧 옛 것을 새롭게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제 창작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책 p. 105에서 재인용)

보르헤스는 그의 단편 곳곳에서 미래의 책읽기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미래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극히 적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글을 쓰기보다는 시간의 풍화로부터 살아남은 소수의 고전명작을 새롭게 읽어내는데 더 치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보르헤스식의 예언이 우리들에게 좀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글과 형식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대부분의 현대작가들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의 오리지날리티란 것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모든 불경의 저자가 석가모니 부처'라고 하는 불교적 사유 전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아함경 초기 불경이 제자들이 기억하는 석가모니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은 수긍이 가지만(그것도 2차, 3차 결집에 넘어가면 시간상의 거리가 너무 난다.), 석가모니불의 사후 수백 년 뒤에 나타나는 대승불교 경전의 경우, 그 저자가 일관되게 석가모니불이라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 같이 그런 경전들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 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승경전의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저자의 이름을 밝히는 대신, 모든 권위를 역사적인 불타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과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저자의 不在'와 일맥상통하는 사유이다.
이런 전통은 비단 대승경전에 한하지 않는다. 신라시대를 살았던 의상(625-702)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물인 {화엄일승법계도기}의 저술을 마치면서 저자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중요한 글의 저자가 중국 화엄종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일본학자에 의해 제기되어 설왕설래되고 있기도 할 정도이다. 보르헤스에게서 모티브를 따와 의상의 글을 해석학적으로 풀어본 김호성 교수의 글([저자의 부재와 불교해석학], 2001년 가을, {동서비교문학저널} 제 5호)을 통해 의상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놀랄 만큼 보르헤스의 목소리와 유사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책  제일 끝에 의상은 이렇게 써놓았다.

{一乘法界圖合詩一印}은 {화엄경}과 {十地論}에 의지하여 '간추려서 풀이한 圓敎의 궁극적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총장 원년(668) 7월 15일 기록하다.
문: 무엇 때문에 저자의 이름을 적지 않는가?
답: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주체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문: 무엇 때문에 년, 월은 밝혔는가?
답: 모든 법이 緣에 의지하여 태어남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위의 책, p. 143)

의상이 의지하고 있는 화엄사상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자신만의 고유한 自性이란 없으며 따라서 無我이며 空이 된다. 따라서 의상이 쓴 위의 텍스트도 이 理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당연히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생겨난 책이란 것이다. 또한 텍스트의 내용이 담보하고 있는 '法(진리)'도 의상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전해진 것을 '읽어낸 것'일 뿐이라고 한다. 사실 의상뿐만 아니라, 붓다의 출현과도 상관없이 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불교의 입장이다('지극히 公한 것에 어찌 私가 있겠나'-至公無私).
더 나아가 화엄의 性起思想에 의하면, '法(dharma)'이란 글자가 의미하고 있는 '진리'와 '사물' 두 가지가 실제로는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에, 세상의 온갖 사물들(頭頭物物)이 모두 비로자나불의 청정법신이 된다. 이 논리는 '모든 것이 텍스트이며 세상은 한 권의 커다란 책'이라는 보르헤스의 입장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거시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컨텍스트가 곧 텍스트이고 텍스트가 곧 컨텍스트(色卽是空 空卽是色)이기에 '개인'과 '저자'라는 개념은 알량한 몽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사유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이론인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과도 연결된다.
이런 입장에서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어느 특정한 '저자'에 의해 유일한 '의미'를 지니는 위대한 '경전'이라는 근대적 주체의 도그마는 매우 유치한 수준의 주장에 불과하게 된다. 글쓰기는 '다차원적인 공간으로부터 온,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길러진 인용들의 짜임'이고 따라서 '단독의 起源은 不在하다'는 상호텍스트성 이론은 매우 화엄적인 사유방식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부재는 곧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글쓰기는 또한 일종의 창조적인 독서가 된다. 롤랑 바르트의 경우, 상호텍스트적인 글쓰기와 조응하는 철학으로 불교를 든다. 그 이유는 불교가 개별적인 특정 주체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보편화 된 주체'의 철학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보르헤스와 거울의 유희}, op. cit., p. 149)
보르헤스의 생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상호텍스트성의 보고로 여겨진다. 많은 비평가들이 그의 글을 읽고, 이 이론의 발상을 찾아내곤 했다. 크리스토퍼 존슨Christopher Johnson은 상호텍스트성 이론이 어떤 텍스트도 그 자체로서 조화롭고 유기적인 단일체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지적한다. 하나의 텍스트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별 텍스트는 많은 텍스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개별 텍스트는 인용들의 모자이크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그것은 다른 텍스트들의 흡수이자 변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드러난 '발현 텍스트fenotext'와 그 기원인 '게놈 텍스트genotext'와의 관계를 연구했다. 키릴 타라노프스키Kiril Taranovsky는 이에 대해 '서브텍스트subtext'와 '컨텍스트context'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전자는 한 작가에 영향을 준 다른 작가의 텍스트를 일컫는 말이고, 후자는 동일한 작가에 의해 씌어지며 공통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는 일군의 텍스트들을 지칭한다. 아드리안 가르시아 몬테로Adrian Garcia Montero는 타라노프스키의 정의를 더욱 발전시켜 '상호텍스트적 공간'이라는 제3의 용어를 추가한다. 이는 하나의 새로운 텍스트가 기존의 텍스트들과 맺는 상호작용에 의해 창출되는 차이들의 체계를 가리킨다. (위의 책, pp. 110-111)
모든 문학작품을 양피지로 보는 보르헤스의 입장에선 특히 상호텍스트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픽션을 쓰는 행위는 이전의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형식과 의미를 창출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에 강한 의문을 표시해온 그는 개별 작가 또한 본질적으로 모든 작가들이며, 개별 텍스트는 모든 텍스트라는 견해를 밝혀왔다. 종이가 귀한 시절 한 번 쓴 양피지 위의 글씨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써왔던 것처럼, 작가는 천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천을 재단하는 재단사가 된다. 더군다나 그는 한 종류의 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잇대어 옷을 만든다.
사실상 보르헤스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사실이건 가상이건 간에 다른 작가의 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같은 책 {알렙}에 게재된 두 단편소설 [아벤하칸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와 [두 왕과 두 개의 미로]에서처럼, 한 작품이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함으로써, 작품 간의 상호텍스트성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타가 인정하는 '상호텍스트성의 고전'은 보르헤스의 단편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작가]이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메나르가 16세기 스페인어 작품 {돈키호테}를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다시 씀으로써 불멸의 작품을 창조했다는 내용이다. 메나르는 이미 세르반테스에 의해 씌어진 작품을 "수없이 원고를 쓰고 다시 쓰고 또다시 쓰고, 집요하게 교정을 가했고, 그리고는 수천페이지에 해당하는 그 원고들을 모두 찢어버렸다." ({픽션들}, 민음사, 보르헤스 전집 2, p. 87) 다소 과장되게 표현된 이 기묘한 작업을 보르헤스는 이렇게 평가한다.

메나르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그때까지 여전히 초보적이고 불완전했던 읽기라는 예술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고의적인 시대교란과, 잘못된 원저자 설정을 통해서 말이다. (위의 책, p. 88)

유일한 저자가 부재하고 다양한 독서가 가능하다면, 글쓰기와 읽기는 유일한 진리라는 개념에서 해방된다. 보르헤스가 창조한 환상세계인 틀뢴에선, 형이상학자들은 '진리'를 찾지 않고 일종의 '경이'를 찾는다. 그곳에선 시간을 초월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단 한 사람의 익명 저자에 의해 모든 책이 씌어졌다고 생각하므로, 책들은 거의 저자명을 적지 않는다. 따라서 표절이란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익명의 저자'는 수많은 대승경전의 저자를 연상케 한다. "모든 것이 佛說이다"는 대승경전의 확언은 개인적인 역사상의 석가모니를 넘어서는 보편적 주체의 불타를 겨냥한다고 이해할 때, "정각을 얻은 날부터 죽는 날까지 한 마디도 설한 적이 없다."는 석가모니의 말 또한 그런 의미에서 타당하다고 이해될 수 있다. 후자가 '저자의 죽음'이라면, 전자는 '독자의 탄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후자가 고정된 텍스트의 부정이라면, 전자는 모든 텍스트가 일종의 양피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7. 맺으며

이상으로 후기 현대와 불교 사이의 가능한 대화를 보르헤스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대화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도 다양하게 뻗어나간다. 예를 들어, 현상적인 모든 사물은 변치 않는 고유한 자성을 가진 게 아니라, 因(직접원인)과 緣(간접원인)에 따라 형성된다고 보는 연기론에 텍스트를 대입하면 그대로 상호텍스트성 이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상이 서로 관계되어 성립하는 것처럼, 모든 책은 각각의 업에 따라 이전과 이후의 다른 책들과 밀접히 맺어지는 연관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중심의 부정은 多元을 낳고, 실체의 부정은 상호관계성을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다른 핵심적인 개념 중의 하나인 다원주의는 이렇게 상호텍스트성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를 가진다.
또한 주체가 없다는 상호텍스트성 이론은 불교의 諸法無我와 만난다. 하지만, 불교사상이 잘 보여주듯이 諸法이 無我라는 것, 諸行이 無常이라는 것, 세상에 중심이 없다는 것 등의 생각은 결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실상에 대한 정직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어디까지나 피상적 현실 너머에 있는 피안의 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모두가 無我이기 때문에 각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無常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세계에 중심이 없기 때문에 각자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일일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보르헤스의 글에는 이런 스타일의 세계관에서 도출되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현기증 나는 아이디어의 보석들이 가득하다. 보르헤스의 글은 완고한 자아라는 화살에 박혀 좁은 유와 존재의 세계 속에서 신음하던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탁 트인 소요유의 세계를 가르쳐 주었다. 서구인들의 집요한 집착을 깨트리는 보르헤스의 예리한 칼날을 공감해 본 지식인들은, 푸코가 그랬던 것처럼, 너털웃음과 함께 고정관념의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왜 많은 지성인들이 보르헤스를 자신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호칭하였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서구는 변방 아르헨티나에서 20세기의 苦를 인식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보르헤스를 통해 새로운 지적 경지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는 직접 불교개론서인 {불교는 무엇인가?}를 썼고, 불교가 자신에겐 구원의 길이었다고 고백도 하였다. 필자는 보르헤스의 문학과 사상이 서구의 知性史上에서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위치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특이한 관점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는 장님이었지만, 놀라운 상상력과 환상의 날개를 달고 우주의 높은 곳까지 유영한 정신인이다. 그는 정신적 전인미답 지역을 탐험한 모험가이며 정신적인 우주를 새로 개척한 宇宙人이다.
이 글은 보르헤스가 작은 가교가 되어 후기현대사상과 불교가 만나고, 보다 새로운 사상이 잉태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문화가 크로스 오버로 만나고, 퓨전화 되는 작금의 자연스런 사회문화현상의 물꼬를 튼 선견적 지식인으로 보르헤스를 기억한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늘 그랬듯이, 예지력은 장님의 몫이자 소명이었다

출처 : 김문억 시인의 초정문예
글쓴이 : 김문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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