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무분별에 의한 판단유보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은 세상을 자기의 지성과 의지로 심판하려는 유혹에 젖거나 빠지게 된다. 각자 자기 생각과 판단에 따라서 세상을 흑백심리와 논리로 재단하지 말기를 종용하는 것이 노자의 도道요, 또한 이 도道가 세상의 근원적이고 불변의 사실이라는 것이 [도덕경]의 핵심사상이다.
* 세상이 무위의 법으로 읽혀지면, 그 세상은 곧 자연성과 합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이미 구원되어 있어서 인간이 세상을 다시 개조하려는 어리석음을 펴지 않게 될 것이다.
* 인과론적 사유는 만유萬有가 신神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반면, 상관론적 사유는 만유가 이미 무無 속에 내표되어 있다
* 인간이 스스로를 절대선이라고 여기면 독선의 아집을 낳으며, 아름다움의 극치에 이르렀다고 여기면 반드시 스스로 오만과 편견의 노예로 굴러 떨어진다.
* 의식적으로 지나치게 미화美化나 성결화聖潔化를 강조하는 사유는 동시에 그의 무의식의 배후에 그림자로 숨어 있는 더러움과 음탕가능성을 은닉하려는 의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바따이유는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혁명가가 너무 깨끗하기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무의식의 깊은 곳에 불결함이 진하게 숨어 있는 것의 반작용일 수 있다.
* 세상의 구원은 세상의 운명을 혁파하거나 혁명하려는 인간의 능동적 마음이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노자의 무위사상은 세상을 보는 마음의 병을 고치기를 종용한다.
* 노자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주의의 허상 때문에 인류가 그동안 많은 시달림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생각했다.
* 연못은 물이 흘러들어오나 결코 넘치거나 가득 차지 않고 늘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만물은 다 스스로 자연의 도리를 따라서 운행할 뿐이지, 인간의 감정에 적합하게 호오好惡와 애증愛憎을 가지고 자신의 생멸生滅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도 이처럼 백성을 자연 만물처럼 무위로 대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 본능이 지능의 분별성에 의존하는 순간에 인간에서 본능과 본성의 괴리가 일어난다.
* 사치스런 마음은 자기 소유의 극대화를 통해 남에게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속물근성과 다를 바가 없다. 속물적 지배의지의 마음은 사치로 표현된다.
*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 인류의 정치사는 노자가 설파한 무위의 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시행된 능위能爲의 정치였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를 쉽게 상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도덕적 겸손(modesty)은 겸허(humility)처럼 존재론적 의미를 띠지 않고, 다만 사회생활에서 남을 기분 좋게 배려하는 윤리적 태도로서의 겸양을 말한다. 그러나 겸허는 그런 윤리적 태도가 아니라, 존재론적 무선무악의 상선上善과 같다.
* 도는 앎에 속하지도 않고 무지無知에 속하지도 않는다.
* 죽음은 허무의 심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뿌리로 귀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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