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調

오랑캐꽃 - 이용악

無不爲自然 2012. 12. 25. 20:55

오랑캐꽃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도래샘 도랑가에 저절로 샘이 솟아 빙 돌아서 흘러 나가는 우물(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

* 띳집 띠로 지붕을 이은 허술한 집

* 돌가마 오랑캐(여진족)가 사용했다는 돌로 만든 가마솥

* 털메투리 털로 만든 신

 

 

이용악(李庸岳, 1914~1971) 함북 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