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調

농무 - 신경림

無不爲自然 2012. 12. 23. 21:22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꺽정이 조선 시대 백정 출신의 의적.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주인공.

* 서림이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임꺽정의 참모

* 쇠전 우시장

* 도수장(屠獸場) 도살장. 짐승을 도살하는 곳

 

 

신경림(申庚林, 1935~)

충북 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