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9 / 박경리 / 마로니에북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가난한 나라에는 남아돌아 가는 것이 있는 듯 보인다.
사람이 많아서 남아돌아 간다는 얘기가 아니고 재화(財貨)가 많아서 남아돌아 간다는 얘기도 아니고 사람의 욕망이 많아서 쓸데없는 물건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근검 절약을 아니하여 가난하다는 말도 되겠고 그러니 상공업은 숭상할 것이 못 되고 농업이 근본이라는 얘기야.
돈이 돈을 거둬들이는 꼴은, 물이 깊은 곳으로 쏠리는 자연의 이치하고 비슷하단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물이 고이면 썩듯이 재화도 고이면 썩어
메마른 들판을 적셔서 풀이 돋아나게 해야 할 것을, 돈의 경우는 어떻게 썩는가. 낭비해서 썩이고 허비해서 썩이고 무용지물을 생산해서 썩이고
무용지물은 무엇이냐, 꾸미는 거다. 사람이란 밥 세끼 때문에 탐하지는 않아. 꾸미는 것이 욕망의 목표가 되거든, 너도 나도, 허상을 향햐 뛰고 싸우고 인성(人性)이 타락한다는 얘기야.
세계의 나라들은 점점 가난해질 것이기 때문에. 무용지물은 쌓여질 것이며, 그 무용지물을 만들기 위해서 삽자루 곡괭이를 팽개친 농부들은 도시로 몰려들 것이고 그놈의 무용지물을 팔아제낄 곳을 차지하고자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날 것이고. p314
환이와 강쇠의 대화 중에서
쓰레기 대란 관련 뉴스가 연일 보도 되는 현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장바구니를 챙기지 않고, 회사들은 재활용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 추석 선물 세트를 개봉하면서 내용물 보다 포장재들이 부피를 더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어이가 없었던.
* 양지바른 곳의 겨울 노인같이 궁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 토지 11 p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