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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 녹색평론사

無不爲自然 2020. 7. 28. 15:01

자발적 가난을 넘어 청빈(淸貧)한 삶을 통해 무소유 정신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우리시대의 노자. 

 

이 책은 국방부 금서 목록에 들어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아동문학작가의 산문집까지.... 많이 궁금했다. 근데 문명과 자본주의 비판의 강도가 상당히 쎄다. 

 

* 교회는 70년대에 들면서 갑자기 권위주의, 물질만능주의, 거기다 신비주의까지 밀려와서 인간상실의 역할을 단단히 했다. 조용히 가슴으로 하던 기도는 큰 소리로 미친 듯이 떠들어야 했고, 장로와 집사도 직분이 아니라 명예가 되고 계급이 되고 권력이 되었다. (중략) 하느님께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이용하여 출세와 권력과 돈을 얻으려 하고,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전부가 되었다. 예수 믿어 삼년 안에 부자 못 되면 그건 '문제교인'이 된다. - p25

 

*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가난한 자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뿐이다. 예수님이 만약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급주택에 살며 고급승용차에 경호원을 데리고 나타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몇백만원씩 나눠주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가 능수능란한 부흥상도 아니고 자선가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가장 소박한 한 인간으로 우리 곁에서 33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해준 삶 때문인 것이다. - p41

- '함께 맞는 비'가 이해가 안 되었는데, 비슷한 맥락일 듯.

 

*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한없이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며 사는 것이 사는 것인가? 이런 삶이라면 들판에 뛰어다니는 짐승이나 새보다 조금도 나은게 없다. 오히려 새들의 자유로움에 비하면 인간이 즐기는 쾌락은 너무도 초라하다. 들판에 뛰어다니는 짐승들은 쌓아놓기 위한 재물엔 탐을 내지 않는다. 양육강식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건은 우리 인간과 다르지 않지만 그들 짐승들은 훨씬 솔직하다. - p50

 

* 나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어린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특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이기적인 욕심이란 생각이다. 그런 어린이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 p52

 

* 나는 가끔 혼자서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는다. 이 땅의 목사님들의 10분의 1만 진정 순교를 각오한다면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리석은 망상인지는 모르겠다. - p56

 

*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위에 널려있는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흉내를 낸다. 흉내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교육의 바탕이다. 전쟁영화를 구경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금방 전쟁 흉내를 낸다. 흉내는 흉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몸에 배고 굳어지면 성격으로 변한다. - p71

 

*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나만이 잘살자는 이기심은 극을 치닫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돌려줘야 하는 것이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평등의 원칙이며 그게 평화로 이어지는 자연의 질서입니다. 구태여 돈을 잔뜩 벌어 남을 구제한다는 마음보다 내가 좀더 가난하게 덜 차지하기만 해도 그게 바로 이웃을 위하는 일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물질의 평등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함께 있는 사회구조로서는 절대 민주주의가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부자는 그 부를 지키기 위해 권력과 결탁을 할 테고 가난한 사람은 굶어죽을 수 없으니 자연히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니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도 목숨입니다. 살기 위하여서는 누군들 자기 몫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 p79

 

* 군사부(君師父)일체라는 말도 좋은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교육은 가르치기보다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머리로만 가르치고 머리로만 배우는 교육은 돈받고 돈주고 맞바꾸는 물건이지 교육은 아닙니다. p79

 

*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 했지만 이제는 하늘의 마음을 가진 백성은 없어졌다. 깨진 바가지도 꿰매 쓰던 우리 어머니들은 버리는 물건이란 없었다. 그러니 아예 쓰레기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강물도 깨끗했고 산과 들도 아름다웠다. p145

- 요즘은 숨만 쉬어도 쓰레기가 생길 듯하다. 뭔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것에서 쓰레기가 부수적으로 생기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가 천년만년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라고 뜻있는 말을 했습니다. 국민이 정부에게 의견도 낼 수 있고, 간섭도 할 수 있는 국민주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나는 미군철수를 원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총 한 자루, 탄알 한 개까지 깨끗이 가지고 떠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인들도 모두 무장해제시켜 고향으로 보내기를 바랍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각자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마음에 드는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게 해주십시오. 한반도엔 남쪽이나 북쪽이나 군대는 필요없습니다. 

 이제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갇혀있지 말고 젊은이들 스스로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야 합니다. 짧은 인생, 좋은 일만 하다 죽는 것도 모자라는데, 무엇 때문에 전쟁 같은 것을 해야 합니까. p231

 

* 나는 가끔 우리집에 승용차를 타고 오시는 손님에게 물어본다. "고속도로를 달여올 때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리 올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한다. 그분들은 고속도로가 뚫리는 과정을 잘 몰라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일 게다. 산이 잘려나가고 논밭이 쓸려나가고, 심지어 옛 무덤들이 파혜쳐지고 조상님들의 혼이 불도저에, 포크레인에 무자비하게 짓이겨진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었고 또 죽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모두 끼니마다 밥상에 시체를 잔뜩 차려놓고 즐기며 먹는 드라튜라들이 아닌가. 시체를 먹고 시체로 된 옷을 입고, 시체로 만든 이불 속에 누워자고, 시체 위를 걸어다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목숨이니, 그 누구도 큰소리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녘에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엄청난 파괴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