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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 한겨레신문사

無不爲自然 2020. 6. 26. 20:25

러시아에서 온 한국인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도 느낀점이지만 제목을 잘 뽑는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또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교수로 근무중이다. 책머리에서 오슬로대학 교수와 학생이 서로 대화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 우리도 언젠가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는 사회가 될 것인가.

후반부 한때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으로 이슈화 되었던 '오태양'과 교환한 서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폭력' 사회 건설을 위한 군대해체 주장은 과연 혁신적이라 할만하다. 과연 인간의 본성상 가능한 일인가 싶긴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보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해 본다. 

 

* 비정규직을 현대판 '천민'으로 대우하는 시대, "부자 되세요"가 사회 전체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는 시대를 하루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 p23

 

* 노르웨이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소비하려는 욕망보다는 오히려 소비를 되도록 줄이려는 구두쇠식 욕구다. p51

 

* '사냥 애호가'들의 말로는, 이와 같은 '권력 체험'은 인간의 가장 깊은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 '권력 체험'이 인간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해 준다는 이야기를 별 부끄러움 없이 대중매체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의 외피 밑에 숨겨져 있는 야만의 '기저'가 얼마나 두꺼운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할 기회가 없자 동물 위에라도 군림하려는 인간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금 인간 위에  군림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p174

 

*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무자비하게 침략한 1982년에 나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그때 환자 중에 '타리크'라는 레바논 소년이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아이의 부모와 가족, 친척과 친구들을 섬멸해 버렸다. 타리크는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 수술을 여러 번 거듭한 끝에 그를 어느 정도 치료했지만 끝내 오른손은 못 쓰게 됐다. 그런데 그 애는 말도 안 하고 음식도 안 먹었다. 완전히 절망한 것이다. 어느날 나는 그에게 의욕을 주기 위해 '왼손으로 총을 다룰 수 있을 것' 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그야말로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싸움에 몰두하다 죽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싸우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그 아이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