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 예담

無不爲自然 2020. 5. 6. 20:02

고흐의 그림에는 쓰디쓴 외로움과 타오르는 열정(광기)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상반된 감정인 외로움과 열정을 동시에 한 장의 그림에 담아내었기에 금세기 최고의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편지에 돈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의 빈한한 삶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지막 죽음으로 예술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이 또 하나 생각난다. 시인 기형도.   


*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p14 - 1879년

- 사랑이 없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우리가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밖에 없고,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 또한 사랑의 기억 밖에 없다는 박완서의 글이 생각난다. 


*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p64 - 1882년

- 뿌리 깊은 고뇌, 격렬한 고뇌가 느껴지는 고흐의 그림 석점 골라본다. [까마귀 나는 밀밭]은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슬픔 1882년


울고 있는 노인 1890년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하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p115 - 1884년


* 벨라스케스가 그의 [물장수] 속에 일하는 사람을 그리거나, 민중 속에서 모델을 찾은 적이 있을까? 전혀 그런 적이 없다. 전 시대 그림의 등장인물이 하지 않은 것, 그건 바로 노동이다. p129 - 1885년


* 미켈란젤로의 인물은 어떠냐? 다리는 길쭉하고 엉덩이는 펑퍼짐하지만 아주 근사하지 않니. 세레에게 전해다오. 밀레와 레르미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건 그들이 건조하고 분석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검토한 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대상에서 받은 느낌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p131 - 1885년


* 잘 익은 곡식이라고 모두 흙으로 돌아가 싹을 틔우고 잎을 피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도 곡식에 비유할 수 있다. 한 알의 곡식에도 싹을 틔울 힘이 있는 것처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 자연스러운 삶이란 싹을 틔우는 것이거든. 사람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싹을 틔우지 못한 곡식알이 힘없이 맷돌 사이에 놓이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자연스러운 성장이 저지되고 아무런 희망 없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될 때가 있다. p152 - 1887년


* 요즘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을 읽는 중인데,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서문을 읽어보았니? 서문에는 "소설가에게는 소설을 통해 자연을 더 아름답고, 더 단순하며, 훨씬 큰 위안을 줄 수 있게 과장하고 창조할 자유가 있다"고 씌어 있다. 그 다음에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라는 플로베르의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쓰고 있다. p165 - 1888년


*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p191 - 18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