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영취산

無不爲自然 2018. 4. 1. 20:43

 진달래하면 영취산이지.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연배가 있다면 화전을 지져 먹던 추억에 젖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모르면 간첩이라지만 간첩도 알만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노래를 좋아하는 젊은이라면 마야를 생각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규에 얽힌 슬픈 전설을 더듬어 낼수도 있을 것이고, 산이라면 진달래로 유명한 산이 전국에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진달래하면 영취산이다. 만약에 진달래하면 떠오르는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반성하시길 바란다. 아~~ 당구풍월이라고 했던가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도 못하던 내가 이제는 진달래와 털진달래의 구분을 고민하는 수준이 되었다. 

 작년에 처음 찾아간 영취산은 많은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진달래를 배경으로 멋진 일출 사진을 담으려는 크나큰 포부로 새벽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산을 올랐으나 초행길이고 안내자도 없어 포인트를 가늠 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작년에 눈여겨 두었던 포인트를 염두해두고 토요일 근무가 끝나자 마자 여수로 출발했다. 혼박을 할거라 호텔이나 모텔은 처량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해서 도미토리 게스트하스트나 차박을 계획했다. 출발 전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해보니 여수 밤바다의 영향때문인지 만석이라 한다. 그래서 차박을 할만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국동항으로 정했다.  내일 가져갈 카메라가방을 꾸리다가 후레쉬를 안 챙긴걸 이제야 알았다. 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을 가르며 산에 들어야하는데 후레쉬를 빠트리다니 그러고보면 간혹 새벽산행을 할때는 항상 성능 좋은 후레쉬를 가져왔던 도반이 그리웠다. 친구라고 하기엔 나이차가 십년이 넘고 뭐라고 불러야할지 그런 사람이다. 작년 영취산때도 후레쉬를 따로 안 챙겼는데 그때는 가방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니면 소형 후레쉬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 마저도 밧데리가 오래 들어가 있으면 안 좋을까봐 꺼내놓았나보다. 높은 산이 아니니까 스마트폰에 있는 후레쉬로 대충 해결해야겠다. 이나저나 내일은 날씨가 하루종일 흐리다는데 일요일빼고는 시간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밤하늘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기만한데 제발 구라청이길 빌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간밤에 추위에 한번, 고성방가에 또 한번 잠을 뒤척였더니 피곤하다. 전체적으로 차박하기에 나쁜 장소는 아니였는데 하필이면 길 옆에 그것도 사람 출입이 많은 곳에서 잠을 청한게 잘못이였다. 간단하게 준비해간 토마토와 키위로 아침을 대신하고 영취산으로 향했다. 5시부터 산행을 시작 일출은 6시 18분이다. 아직은 어두운 산길을 따라 작년의 기억과 카카오맵을 의지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새벽에 산을 올라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혼자서 이 어두운 새벽에 묘지를 지나는 공포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저 곳에 뭐가 있는지 훤히 안다면 뭐가 두려울 것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이런 경우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그 사람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면 무서울 이유가 없다. 쉰이 가까워지는 나이라 이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져서 그런지 이 어두운 산중에 묘지를 지나가는데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삼십분이 넘어서면서 부터는 후레쉬 불빛이 없어도 걸을만 하더니 여섯시가 가까워지니 먼동이 트는지 주위가 환해진다. 오늘 만큼은 기상청이 역할을 제대로 할려나보다. 주위는 밝아오지만 해는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이 남으면 다시 찾는게 인지상정이지만, 실망이 크면 돌아설뿐이다. 피천득은 인연에서 세번째 만남에서 아사코를 시들어가는 목련으로 비유했다. 목련만큼 시들어가는 모습이 비루한 꽃이 또 있을까? 시든다기보다는 녹슬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기도한다. 일출을 보지 못한 실망감이 큰 탓인지 두번째 찾은 영취산의 진달래는 가을날 코스모스 들판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