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윤구병
가난과 행복이 공존할 수 있는가? 필자는 강요된 가난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No'이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 절제이다. 넘쳐나는 풍요가 행복의 원천이 아님은 물론이다. 행복은 '절제' 속에서 가능할 뿐이다.
* 내 나이 예순여섯. 이 나이가 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더라도 그건 자연사야. 내일 벼락 맞아 죽더라도 마찬가지야. p6
* 기계나 화학제품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물질에너지에 기대는 비율을 줄이고 될 수 있으면 몸으로 때우거나 그게 워낙 힘겨워 다른 힘을 빌리겠거든 소에 쟁기나 보습을 매는 생명에너지 이용 비율을 높이자, 그래야 에너지의 낭비가 없고 그 낭비된 에너지가 쌓여서 빚어내는 쓰레기가 없다, 자연에 쓰레기가 없다 함은 바로 자연은 생명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싶어 새로 집을 짓더라도 방에 구들을 깔고, 수도를 끌어 쓸 만한데도 힘들여 우물을 파니, 이웃에서 저 사람들 세상 거꾸로 산다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p39
* 가난은 지긋지긋하다고요? 강요된 가난은 그렇겠지요. 당장 끼니가 걱정되는 가난은 원수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p70
*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자연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쓰레기는 낭비된 생명에너지의 다른 이름입니다. 아직도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멀쩡한 물건을 버리고 이제 갓 나온 새것이 더 기능적이고 효율성이 앞선다 하여 귀 얇은 소비자들을 '몽유병적인 구매환자'로 둔갑시키는 상품경제 사회의 확대재생산 원리 때문에 지구는 이제 어디나 쓰레기 처리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