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 이덕일
우리 사회는 정약용이 도를 펼칠 수 있는 사회인가? 책 말미에 저자가 던진 질문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예수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애석하게도 소설속에서 재림한 예수는 자신을 가장 반겨야할 기독교 수장에게서 오히려 쫓겨난다. 우리 사회의 정약용도 그 뜻을 펼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종북딱지나 얻어서 붙이고 있지나 않을까?
역사서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애석함 보다는 통쾌함이기를~~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되새기며 그때 이랬더라면 하며 아쉬워하며 후회하는 마음이 인지상정인것을.. 통쾌함을 바라는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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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당은 『노자(老子)』의 "망설이면서[與]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猶]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 [與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p36
* 반드시 가장 총명한 선비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을 만나서 종일토록 사람 소리나 수레바퀴 소리가 없는 곳에서 외롭게 지낸 뒤에야 경전과 예서(禮書)의 정미한 뜻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p135
* 무릇 남자가 독서하고 행실을 닦으며 집안일을 다스릴 때에는 한결같이 거기에 전념해야 하는데, 정신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정신력이 있어야만 근면하고 민첩함이 생기고, 지혜도 생겨서 업적을 세울 수가 있다. 참으로 마음을 견고하게 잘 세워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비록 태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해서 자못 깨달았는데,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더라도 오히려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한 자라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한 가지 책을 읽더라도 겸하여 수백 가지 책을 엿보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야 책의 의리(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으니, 이 점을 꼭 알아야 한다. p142
* 어떻게 하면 절약할 수 있느냐. 무릇 재물을 쓸 때 이를 쓰지 않아도 살 수 있느냐 생각해서 살 수 있다면 쓰지 말고, 이를 쓰지 않아도 인(仁)을 다치지 않겠느냐 생각해서 다치지 않는다면 쓰지 말고, 이를 쓰지 않아도 검소함에 손상되지 않겠느냐 생각해서 손상되지 않으면 쓰지 말 것이니, 가장 먼저 긴요하고 가장 급한 것을 좇아 이를 쓸 것이요, 쓰고 남음이 있으면 저축하여 다른 날을 기다리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느냐? p224
* 천하엔 두 개의 큰 기준이 있으니, 하나는 옳고 그름[是非]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해를 입는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는 경우이고, 가장 낮은 등급은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여 해를 입는 경우이다.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