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 코맥 매카시
황량한 잿빛 세상. 그 곳에 희망은 없었다.
로드는 책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다. 영화를 보면서 도시 뿐만아니라 숲까지도 폐허로 변해버린 지구 멸망의 그곳에서는 우리가 가지려 했던것들이 다 쓰레기였구나 하는 깨달음정도. 전혀 새로울것도 없는 귀에 딱쟁이가 얹힐 정도로 들었어도 느껴지지 않던것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올때가 있다. 쓰레기로 가득찬 방 안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문명이라는 이름하에 우리가 예술이라고 이름하는 것들 조차도 다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구나 하는 느낌. 그후 언젠가 책으로 읽어보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때가 이제 찾아왔다. 책은 영화보다 더욱 음울하다 못해 암울하다. 아무런 대책없이 근거없는 희망을 품고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가는 아버지와 아들. 끊임없이 춥고, 배고프고,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조바심내며 길을 간다. 루쉰이 길에서 희망을 보았다면 매카시의 길은 절망이다. 차라리 죽음이 구원의 길이다.
과학이 아닌 문학이라는 장르를 감안하면서 읽기는 했지만, 모든 식물이 고갈된 상태인데도 동물(인간)은 호흡이 가능한건지 하는 의문과 태양이 빛을 잃어버린 상태인데 비와 눈은 끊임없이 내리는 상황도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인류가 맞이하는 커다란 재앙 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 비해 상상력이 부족해보인다.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은 영화화 된 작품들이 여러 편이다. 로드는 물론이고 잘 알려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의 작품이다. 다소 섬뜩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로드 중의 대부분의 비유가 상상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들어간다. '정오의 하늘은 지옥의 지하실만큼이나 시커멨다.' 지옥만큼도 아니고 지옥의 지하실만큼이라든지 '지옥의 매점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 같았다.' 라든지. 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옮겨 놓았지만, 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좋았던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품었던 의문점들이 해결되리라 기대했던 것이 해갈되지 않아 소설을 읽으면서 다소 실망하게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멸망의 길에 들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어갈때 지상에 마지막 생존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분명 善한 자는 아닐 것 같다.
-----------------------------------------------------------------------------------------------------------------------------------------------------
* 전에는 우리도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하곤 했어. 하지만 이젠 안 해. 왜 그럴까? 모르겠어. 죽음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지. p67
* 자신이 죽으면 다른 모두가 죽는 것과 똑같다. p193
* 있지도 않았던 세계나 오지도 않을 세계의 꿈을 꿔서 네가 다시 행복해진다면 그건 네가 포기했다는 뜻이야. p215
* 오래전부터 이렇게 될 거였어. 지금 이렇게 된 것 뿐이야.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