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책을 읽고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책들이 많아 여기에 몇자라도 남겨두려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테니까.
올리기 전에 인터넷에서 잠시 검색을 해보기도 하는데 영화화되기도 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했었는지. 아니 그것보다는 문화라는 탈을 쓰고 폭력적으로 쏟아지는 볼거리와 읽은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살아가면서 눈이 멀수도 있다는 생각을 누군들 한번이라도 하기나 할까? 장님이 된다면 단순히 많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정도.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책 속에도 나오지만 '반은 죽었다'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소설의 표지를 넘기면 처음 나오는 말이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 [훈계의 책]에서' 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평범해 보이는 훈계가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작가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은 것이다. 외면해 버리고 싶고 눈 감아 버리고 싶은 현실에 대해서 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p31
* 선을 행하다 보면 언제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대체로 억세게 운이 좋다. p41
*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p52
* 다른 결함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그런 신체적 결함이라는 것은,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p68
*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단지 현재의 우리 모습보다 더 나쁜 건 상상할 수 없을 뿐이죠. 글쎄요, 나는 불행이나 악에 한계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p204
* 가장 심한 소리는, 배고파도 참으시오,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시오, 하는 소리였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으니, 그 말을 듣느니 차라리 모욕을 당하는 것이 나았다. p230
* 남자들이 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이 여자에게서 저 여자로 건너다닐 거라는 상상.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내가 혹시나 약간의 쾌락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거야, 한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p263
*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p300
*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숲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p300
* 이제 램프는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본래의 용도로 이용될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이 램프의 운명이 아닐 줄 알았다. 그러나 램프든, 개든, 사람이든, 누구도 또 어떤 것도 처음에는 왜 이 세상에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p385
*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예요. p387
* 우리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두려워서, 늘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용서해 줄 구실을 찾으려고 하죠. p405
*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p419
*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걸 빼앗은 거야, 우리가 너무 많이 빼앗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거지, 이런저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살인자야. p443
* 내가 그 양반을 아주 잘 알고 있소, 그는 그런 짓을 할 수 없는 사람이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예요. 기다려봐야 해요, 시간을 줘봐야 해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예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예요. p449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