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책 제목치곤 특이하다.. 평소에 박완서의 글들이 신변잡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내놓고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고 표지에서부터 거론하고 있다. 근데 왜 제목은 저렇게 지은걸까? 1992년에 발표된 소설이니까 그 시절 처음 대할땐 무심결에 '싱아'가 '상어'로 보였고, 나중에 싱아가 초본의 한 종류라는 걸 알았다. 소설중에도 싱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잠깐 나온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p77
더 나중에 산과들에 나다니면서 들꽃 사진을 담으며 싱아를 직접보기도 했지만, 도대체 먹을거라곤 보이지 않았는데 줄기를 벗겨 먹는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되었다.
그리고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속뜻도 어렴풋히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싱아는 사라져가는 옛것,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유년의 추억을 내포하고 있으리라.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박완서와 같은 세대라면 공감하는 바가 크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의 유년시절과 비교해보며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비록 싱아의 줄기를 벗겨먹는 추억은 없더라도..
일제시대 말기와 6.25라는 시대적 아픔을 소시민으로 관통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담담하고 유려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2012년 8월 9일 담양에서
'저게 싱아야'
건너편 바위 위에 앉아서 세족을 하고 있던 형에게 나는 손가락짓으로 아는 척을 한다.
딴데없이 뭔 소리인가 나의 손끝을 따라 뒤돌아보고난 형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몰라? 소설도 있자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제서야 호기심이 동했는지 계곡 가장자리 나무 옆에 핀 저걸 말하는 거냐고 묻고는 일어나서 가본다.
이리저리 대충 쳐다보는가 싶더니 돌아와서 앉으며 하는 말이
'먹을거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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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p90
*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p192
* 살아남은 자는 제각기 구사일생이나 간발의 차이를 안 거친 이가 없었으니, 천명이 아닌 이 또한 없었다. 누구나 한번 사선을 넘고 나면 담대해지고 뭔가 보람 있는 일에 몸바치고 싶은 의욕이 충만해지는 법이다. p251
*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