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 열살 풋사랑을 평생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아오마메와 한 살 반 때를 기억하는 덴고.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영화같은 노래같은 사랑이야기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분량이 분량인 만큼 줄거리를 압축한다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니지만 압축된 줄거리를 읽는것과 소설을 직접 읽는 것은 다른 일일 것이다
소설의 모티브는 조지 오웰의 「1984」이다. 빅 브라더를 대신하여 리틀 피플이 등장한다. 시작은 「1984」이지만 주요한 골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연상시킨다. 인간 구원과 善惡의 문제를 화두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남자는 말했다.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묘사한 것도 그러한 세계의 양상이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 게야. 2권 p289
善惡의 경계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적이라면 권선징악의 미덕도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처럼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 아닌지?
노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널리 알려진 선을 선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다른 세계(1Q84)를 상상하는 사람은 지금 사는 세계에서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다른 세계...
지구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과연 하나의 세계에 사는 걸까? 지역이나 시간의 관념을 뛰어넘어 하나의 세계라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유럽에 사는 소녀와 아프리카에 사는 소녀가 한 세계에 산다고 말하기 힘들 뿐더러 중세를 살았던 사람과 2013년 현재를 사는 사람 또한 한 세계를 살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한 마리의 나비를 보자면 답답해 보이는 번데기나 애벌레로 살았던 세계와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로 사는 세계가 한 세계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굳히 페러럴 월드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다른 세계는 우리와 함께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한 것처럼 알속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를 친근하게 여기는 것처럼 일본사람들은 개보다는 고양이를 더 친근하게 여기는거 같다. 일본의 영화와 문학 속에서 고양이는 친근한 이미지로 자주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필두로 나쓰메 소세키의 출세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등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마을은 1Q84의 공간적 개념으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끝으로 소설속에 유독 자주 나오는 단어가 눈에 띈다. "고맙게도"이다. 작가가 평소에도 잘 쓰지 않을까 싶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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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덴고에게는 인생 최초의 기억이다. 그 십 초 남짓한 정경이 의식의 벽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앞도 없고 그 뒤도 없다. 거대한 홍수에 휩쓸린 도시의 첨탑처럼 그 기억은 홀로 덩그러니 탁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p31
* 타인의 경원하는 눈초리를 - 혹은 분명하게 미움받는 것을 - 꽤 즐기기도 했다. 예리한 정신은 안락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다, 라는 게 그의 신조였다. p45
* 모든 것은 유전자에 일찌감치 설정되어 있는 일이다. 거기엔 망설임도 없고 절망도 없고 후회도 없다. 형이상학적인 의문도, 도덕적 갈등도 없다. p66
*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대단히 소중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야." 노부인은 말했다. "그저 그것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뜻을 갖게 된단다." p476
* 체호프는 말했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p559
* 인간의 뇌는 최근 이백오십만 년 동안 그 크기가 약 네 배로 증가했다. p581
*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와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p626
* 온 세상의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핵무기를 폐기하지도 테러를 근절하지도 못하지 않을까. 아프리카의 가뭄을 끝내게 하지도, 존 레넌을 다시 살아나게 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러기는 커녕 신들끼리 패가 갈려 격렬한 싸움이나 하게 되지 않을까. p147
*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실증 가능한 진실 따위는 원하지 않아. 진실이란 대개의 경우, 자네가 말했듯이 강한 아픔이 따르는 것이야.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아픔이 따르는 진실 따윈 원치 않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이야기야. 그러니 종교가 성립되는 거지. p276
* "복수만큼 코스트는 높고 이익은 생기지 않는 일은 없다, 고 누군가 말했죠."
"윈스턴 처칠이야. 다만 내 기억으로는 그는 대영제국의 예산 부족을 변명하기 위해 그같은 발언을 했지. 거기에는 도의적인 의미는 없었어." p293
* 카를 융은 어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
'그림자는 우리 인간이 전향적인 존재인 것과 똑같은 만큼 비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선량하고 우수하며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림자 쪽에서는 어둡고 비뚤어지고 파괴적으로 되어가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 왜냐하면 이 자연계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p326
* 인간의 피부세포는 매일 4천만 개씩 죽는다는 사실을 덴고는 문득 떠올렸다. 그것들은 죽어서 떨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 간다. 우리는 어쩌면 이 세계의 피부세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어느 날 문득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p412
* 희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다. 네 말이 맞아. 그건 확실해. 단지 희망은 수가 적고 대부분 추상적이지만, 시련은 지긋지긋할 만큼 많고 대부분 구체적이지. p57
*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만큼 속여먹기 쉬운 상대도 없다. p96
* 그녀는 매우 깊이 잠을 자고, 꾸는 꿈도 깊은 곳에 있는 꿈이었다. 그런 꿈은 심해에 사는 물고기 같아서 수면 가까이로는 떠오르지 못하는 것이리라. 만일 떠오른다 해도 수압의 차이 때문에 원래의 형태를 잃고 만다. p181
*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머리로 뭔가 생각하는 걸 아예 하지 못한다 - 그것이 그가 발견한 '귀중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일수록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p229
* 사람은 때가 되어서 죽는게 아니에요. 안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가다가 이윽고 최종 결제기일을 맞는 것이지요. p341
* 당신들의 인생은 당신들에게는 분명 소중한 의미가 있겠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도 할 거야. 그래, 그건 알겠어. 하지만 나한테는 있으나마나 전혀 아무 상관 없는 인생이야. 나한테 당신들은 무대에 그려진 풍경 앞을 스쳐가는 흐늘흐늘한 종이인형일 뿐이야. p469
* 고통이라는 건 간단하게 일반화 할 수 있는 게 아냐. 개개의 고통에는 개개의 특성이 있어. 톨스토이의 유명한 한 구절을 약간 바꿔 말해보자면, 쾌락이라는 건 대체로 고만고만하지만, 고통은 나름나름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지. p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