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체호프는 국내에 널리 소개되어 있지 않다. 러시아의 단편문학의 천재라고 칭송되는 체호프. 단편들 뿐이라 그의 대표작을 꼽기 힘들다. (단편들만을 남긴 루쉰은 그래도 아큐정전이라는 대표작이 있다.) 그래서 국내 출판계에서 소개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책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이지만 벌써 그와의 두번째 만남이 기다려진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문체에서 느껴지는 겸손함이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회색주의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겸손함 때문이라고 생각할련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체호프 단편선]에는 열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거 하나 좋지 아니한게 없지만 그중에서 [내기]라는 작품만 간략하게 적어볼련다.
은행가와 젊은 변호사는 사형이 나은지 종신형이 나은지 논쟁을 벌인다. 젊은 변호사가 둘다 비윤리적이긴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다면 종신형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은행가가 젊은 변호사에게 15년 동안의 자발적인 감금생활에 이백만루블 내기를 제안하고 황당한 내기는 시작된다. 15년 동안 온갖 책을 섭렵한 이제는 젊지 않은 변호사는 득도?를 하게되고 은행가는 쇠퇴의 기로를 걷기 시작하여 이백만루블을 주게되면 파산에 빠질 형편에 이르게 된다. 내기 종료일 하루 전 밤에 은행가는 변호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변호사가 감금되어 있는 바깥채로 향하는 은행가. 변호사는 자고 있다. 책상 위 종이를 발견하고 읽어보는데 노자와 장자와 같은 말과 함께 계약 종료 다섯시간 전에 스스로 계약을 파기할 것이라고 씌여져 있다. 변호사는 조용히 돌아가고 다음날 아침 경비원이 변호사가 창문을 통해 사라졌다고 말한다. 독서,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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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p20
* 옛날의 일들은 실제로는 그랬을 리 없는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저승에서 아마도 우리는 먼 과거에 이승에서 살았던 삶을 바로 이런 감정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p176
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