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3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3 - 파멸을 부르는 정욕
올 연초에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석영중]을 읽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돈을 수식하는 단어가 눈에 띈다. 모든 돈의 수식어가 바로 '무지개 빛'이다. 무지개는 흔히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평생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돈이 무지개 빛으로 보였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이나저나 다 읽고 나니 커다란 산맥을 하나 넘은거 마냥 뿌듯한 성취감이 든다.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니 쉽게 엄두가 나지도 않긴 하지만,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읽는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살인 사건이 있으니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테고. 결말도 상당히 궁금할테고.
단순히 줄거리만 따진다면 막장드라마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관념적인 주제가 이 소설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인간 본성, 신과 종교, 죄와 구원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죽이고 싶고 죽기를 바랐을 뿐인데도 죄가 되는가?'
소설 속에서 가장 연민이 가는 인물은 공교롭게도 번역자는 악의 화신이라고 낙인을 찍은 스메르자코프이다. 태생부터가 가장 비극적일 뿐더러 깜냥이 따라주기 못하는 능력의 소유자로 결국 죽음 또한 비극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이 교차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악이 승리를 거두고 본색을 드러내게 만드는 건 사회적인 힘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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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걸어 다니면서도 늘 몽상에 잠겨 있어요. 그의 말로는 뭣 하러 현실에 얽매여 살 것인가, 차라리 몽상에 잠겨 있는 편이 낫다는 거예요. 몽상 속에서라면 아주 즐거운 것도 꿈 꿀 수 있지만, 실제 삶을 산다는 건 지겹다는 거죠. p152
* 내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부활했어! 그 인간은 나의 내부에 갇혀 있었는데, 이렇게 끔찍한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 p172
* 누구나 자신이 부활의 가능성이 없는, 그야말로 필명의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되, 신처럼 오만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너무도 오만하기 때문에 인생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도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이제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그저 삶의 순간만을 만족시킬 따름이지만, 그것이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불꽃은 강렬하게 타오를 것이니, 그것은 이전에 무덤 저편의 무한한 사랑을 갈망하며 타올랐던 그 불꽃만큼이나 강렬할 것이다. p296
* 우리는 이와 같은 모든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토록 음울한 사건들이 우리에게 거의 더 이상 공포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는 데 바로 우리의 공포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정작 공포를 느껴야 되는 대상은 우리의 습관이지, 이런저런 개인의 개별적인 악행이 아닙니다. p387
* 카프카스의 독수리처럼 피에 굶주려 명민함을 발휘하다가 한순간만 지나면 시시껄렁한 두더지처럼 눈먼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 p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