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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 박완서

無不爲自然 2012. 3. 5. 16:54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한다면 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남편 사별이후 혼자만 비밀스럽게 가슴에 담아두었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황혼의 나이에 풀어 놓았다.

 그래서 독자들은 타인의 연애 편지를 훔쳐보는 듯한 옹골찬 맛이 있다.

 그 시절에도 사랑을 했을까? 먹고 살기도 바쁜 그 시절에 사랑이 사치라면 그 시절 사랑 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 가장 필요했던 시절이지 않을까.

 삶의 진솔한 내면이 궁금하고, 첫사랑의 기억을 더불어 더듬어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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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치 길 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러 오른 계집애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둑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p37

* 남이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내지 않는 애인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을까. p37

* 귀로의 허기와 충만감, 귀로의 쓸쓸함과 조급증, 귀로의 피곤과 안도감 p50

* 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랏빛 아이리스, 불꽃 같은 영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화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 같은 석류꽃, 숨가쁜 치자꽃 p53

* 한 사람에게 몰두하는 일이 얼마나 집중력을 요하는 중노동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p70

*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 p70

* 착한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만 착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에 도덕적인 책임은 으레 남한테 덮어씌우려 드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86

*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p96

*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p97

* 인생이 살 만한 건 정답이 없기 때문인 것을 p101

* 온 세상이 저애들 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p102

* 변화를 꿈꿀 수 없는 안정감이야말로 나에게는 족쇄였다. p162

* 그렇다면 나에게도 영육이 있을 것이다, 지금 시달리고 있는 것은 영혼인가 육체인가, 성적 갈망과 영혼의 고픔은 어떻게 다른가, 왜 영혼의 고픔은 추앙받고 성 욕망은 매도당하는가. p187

* 늙는다는 게 인간사보다 귀신에게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 p202

 

 

박완서(1931~2011)

1970년 <나목>출간

1982년 <엄마의 말뚝>출간

1990년 <미망>출간

1992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출간

2004년 <그 남자네 집>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