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의 모험담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읽자 하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도입부 구성이 매끄럽지 않다. 예를 들면 비행기가 불시착하였는데, 부상자 이야기가 전혀 없는 거라든지, 생존자는 오로지 소년들 뿐이라는 거라든지, 기껏해야 12살짜리 소년들이 먹거리를 쉽게 구해낸다는 거라든지, 안경으로 불을 붙인다는 설정 등등. 그런 생각으로 읽다보니 억지 같기도 하고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해설을 읽어보고 놀라운 상징의 세계가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목부터 상징이다. <파리대왕>은 헤브루어로 <베엘제버브>를 번역한 것으로, 직역하면 <곤충의 왕>이고 소설 속에서는 악마 또는 인간의 야만성을 상징한다. 등장인물과 주요한 소재들도 상징으로 도배되어 있다. 상징된 문자를 문자 그대로 읽으니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지은이가 상징 체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은 배제하고 긴요한 요소들은 과장을 함으로써 도입부의 설정이 현실의 잣대에만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구조를 위한 봉화를 중요시 하는 <랠프>와 육식을 위한 사냥을 더 중요시 하는 <잭>과의 다툼이다. 결국에는 인간 사냥도 서슴지 않을 만큼 야만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육식이 인간의 공격성을 자극하고 키워내는 모양이다.
인간이 오랜 세월 쌓아온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며, 인간의 야만성을 고발한 작품이다.
소설속에서의 상징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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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것이 재미있고 삶이 더 없이 충족하여 희망을 품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희망 자체도 잊혀지는 마는 때 p83
* 얼굴을 가리는 색칠이 얼마나 사람의 야만성을 풀어놓아 주는 것인가 p259
*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의 세계가 의젓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섬에서의 어린이들의 상징적 생활과 똑같은 악(惡)으로 얽혀 있다. 장교는 사람 사냥을 멈추게 한 후 어린이들을 순양함(巡洋艦)에 태워 섬에서 데려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순양함은 이내 똑같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 적을 사냥질할 것이다. 어른과 어른의 순양함은 누가 구조해 줄 것인가?p320
윌리엄 제럴드 골딩 (William Gerald Golding, 1911~1993)
1954년 <파리대왕>출간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